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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09. 2. 16. 11:40
대사연 1박2일 출사다.먼저 온 곳이 동백섬인데 이젠 섬이 아니다. 짙푸른 겨울 하늘에 넘실대는 해풍이 두터운 녹색 이파리를 윤기나게 한다. 선지보다 붉은 빛의 정열을 피우기 시작한다. 신라의 천재로 당(唐)에서 활약하다 말년에 고국해서 살다간 당대의 천재를 보는 데는 150미터 밖에 오르지 않는다. 격문 한 장으로 황소(黃巢)의 난을 제압했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내용은 무엇일까. 고운 최치원 해운대유적보존회 부산종친회에서 작성한 격황소서(檄黃巢書) 한 권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아무래도 영웅의 이야기지 범인(凡人)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일 게다. 이미 다 가르쳐 보았기 때문에 더는 배울 것이 없다는 교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데도 어디서 불현듯 그런 교만이 생겨나는 것일까. 하여 원문은 생략하고 번역문을 실었다.(http://blog.naver.com/kemshine?Redirect=Log&logNo=40015556217)
번역문은 설익은 밥을 먹는 것처럼 어색해서 괜한 짓을 했다 싶다. 해운대(海雲臺)의 해운도 해인사 거쳐 여기 내려와 보낸 고운의 호를 따서 부른 지명이라고 한다. 차라리 이런 격문보다는 익히 아는 이역만리에서 향수에 젖어보는 서정적이고 애상적인 "추야우중(秋夜雨中)"이나 당에서 쫒겨 귀국해 세상과 절연하고픈 외로움을 드러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 훨 낫겠다. 언제적 호(號)인지 모르되 고운(孤雲)이니 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재는 언제나 말년이 쓸쓸하다. 부산 동백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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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 최치원(崔致遠)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개는 황소에게 고한다.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정도正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 아는 것을 권도權道라 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이치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고, 어라석은 사람은 이치를 거스리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인생 백년을 살더라도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으나, 만사는 마음이 주장하는 것이므로 옳고 그른 것은 충분히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이제 내가 황제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으나 다만 정벌이 있을 뿐 싸움은 없는 것이나,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니, 앞으로 천자의 서울을 회복하고 큰 신의를 펴고자 공경하는 마음으로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간사한 꾀를 부수려 한다. 네가 본래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서울을 어지럽히고 드디어 음흉한 마음을 가지고 황제의 자리를 노리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렵혀 이미 그 죄가 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에 이르렀으니,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아, 요순 때로부터 내려오면서 묘족苗族이나 호족扈族 따위가 복종하지 않았으니, 양심이 없는 무리와 불의 · 불충한 너 같은 무리가 어느 시대라고 없었겠는가. 먼 예날에 유요劉曜와 왕돈王敦이 진晉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안록산安祿山과 주자가 우리 황실을 개 짖듯 우습게 여겼다.그들은 오히려 모두 손에 강성한 병권을 잡았거나, 또는 중요한 지위에 있어 호령만 떨어지면 수많은 사람이 우레와 번개가 달리듯 하고, 시끄럽게 부르면 아부하는 무리들이 안개나 연기처럼 몰려들어서 길이 막힐 정도가 되었다.그런데도 잠깐 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더러운 종자들이 섬멸되고 말았다. 햇빛이 활짝 펴지면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는가? 하늘의 그물이 높이 드리워져서 반드시 흉한 족속들을 없애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너는 천한 몸으로 태어나, 농사꾼으로 일어나서 불 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꾀라 하며, 살상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짓고, 속죄될 만한 어진 일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드러내놓고 죽일 생각을 하고 있으며, 아울러 지하의 귀신도 이미 몰래 너를 죽이려고 의논할 것이다. 비록 잠깐 동안 숨이 붙어 있으나, 벌써 정신이 없어지고 넋이 빠졌으리라.
사람의 일 가운데서 자신을 아는 것이 제일이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어라.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덕이 깊어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 은헤가 중하여 잘못을 따지지 않고 너를 절도사로 임명하고 지방 병권을 주었다. 그렇거늘 너는 오히려 짐새의 독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않아,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하는 짓이 개가 주인에게 분수 모르고 짖어대듯이 했고, 나중에는 몸이 임금의 덕화德化를 등지고 군사가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제후들은 위태로운 길로 달아나고 임금은 먼 지방으로 파천하게 되었다. 너는 일찍 덕의德義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모질고 흉악한 짓만 더해갔다. 결국 황제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베풀었는데, 너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반드시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하늘이 무섭지 않겠는가.하물며 주나라 솥을 옮기는 것에 대해 물어볼 것이 아니니라. 한나라 궁궐이 어찌 너 같은 자가 머물 곳이랴. 너의 생각은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너는 듣지 못했느냐. <도덕경>에, "회오리 바람은 하루 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나기는 하루 동안을 채우지 못한다" 했으니, 천지도 오히려 오래 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또 듣지 못했느냐. <춘추전>에,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너는 간사한 것을 감추고 사나운 것을 숨겨서 악이 쌓여서 온갖 재앙이 가득한데도 위험한 것을 스스로 편하게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르는구나. 옛말에 이른바 제비가 장막 위에다 집을 지어놓고 불이 장막을 태우는 데도 방자히 날아드는 것이나, 물고기가 솥 속에서 희희낙락하다가 바로 삶겨지고 마는 것과 같은 꼴이다.
나는 웅장한 군사적 계략을 가지고 여러 군대를 모았으니, 날랜 장수는 구름같이 날아들고 용맹스런 군사들은 비 쏟아지듯 모여들어 높고 큰 깃발은 초새楚塞의 바람을 에워싸고 군함은 오강吳江의 물결을 막아 끊었다. 진나라 도태위都太尉는 적을 부수는 데 날래었고, 수나라 양소揚素는 엄숙함이 신이라 일컬어졌다.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라에 횡행했다. 맹렬한 불이 기러기 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 태산을 높이 들어 참새 알을 눌러 깨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서늘한 바람이 이는 가을에 물귀신이 우리 군사를 맞이한다. 서풍이 불어 말라 죽이는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 이슬은 답답한 기운을 상쾌하게 해준다. 파도도 일지 않고 도로도 잘 뚫려, 석두성石頭城에서 닻줄을 푸니 손권이 뒤에서 호위하고 현산峴山에 돛을 내리니 두예杜預가 앞장선다. 서울을 수복하는 것은 열흘이나 한 달 정도면 틀림없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상제의 깊으신 인자함이요, 법을 굽혀 은혜를 베풀려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다.나라의 도적을 정복하는 이는 사사로운 분함을 생각지 않는 것이요, 어두운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해주어야 한다. 나의 한 장 격문으로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위급함을 풀어주려는 것이니, 융통성 없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기회를 잘 알아서 스스로 계책을 세워 허물을 짓다가도 고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땅을 떼어 나라를 열어 대대로 부를 계승하게 하고 몸과 머리가 두 동강 나는 것을 면하게 해줄 것이며, 높은 공명을 얻게 할 것이다.
서로 겨우 낯만 익힌 정도밖에 안 되는 도당의 말을 믿지 말고 영화로움을 후손에까지 전하도록 할 것이다. 이는 실로 대장부의 일이다. 아녀자가 알 바가 아니니 그들이 말린다고 해서 그 말을 좇아서는 안 된다. 미리 무리에게 보고하여 공연한 의심을 살 필요가 없느니라.나의 명령은 천자를 받들고 믿음은 강물에 맹세하여, 반드시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응하는 것이요, 원망만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미쳐 날뛰는 도당에 견제되어 취한 잠을 깨지 못하고 여전히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듯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그때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군사로 한 번 휘둘러 멸망시킬 것이다. 오합지졸의 군사가 사방으로 흩어져 몸은 도끼에 기름 바르게 될 것이요, 뼈는 전차 밑에 가루가 되며, 처자도 잡혀 죽으려니와 종족들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생각하건대, 동탁의 배를 불로 태울 때처럼 너를 불사르는 지경에 이르러서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너는 모름지기 진퇴를 참작하고 잘된 일인가 못된 일인가 잘 판단하라. 배반하여 멸망하기보다 귀순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다만 바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 장사의 결단력을 택하여 표범의 무늬처럼 현저하게 개과천선할 것을 결정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 우유부단하게 하지 말라. - 최치원/손광성 편역
최치원 - 호는 고운孤雲. 열 두 살 때 중국으로 건너가 열일곱 살 때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 내공봉의 벼슬을 지냈다. 그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이 글을 지었고 이것을 읽은 황소가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29세 때 귀국하여 아찬이 되었으며, 그 후 벼슬을 버리고 각지를 유람하다가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 계원필경桂苑筆耕이 있다.
해운대〔海雲臺〕 / 성현
거센 바람 불어와서 파도 소리 쿵쾅대어라 / 長風吹捲浪聲豪
신시는 공중에 연하고 해약이 부르짖는 듯 / 蜃市連空海若號
해는 부상에서 떠올라 지척처럼 가깝고 / 日出扶桑如尺咫
구름은 마도를 덮어 추호처럼 작아 뵈네 / 雲埋馬島少秋毫
멀리 노닒에 천하가 좁음을 절로 깨닫겠고 / 遠遊自覺寰區隘
장한 기개에 안계는 더욱더 높아지누나 / 壯氣多增眼界高
천재에 고운이 뛰어난 자취를 남기었거니 / 千載孤雲留勝跡
옛일 생각하며 봄 술에 취함도 무방하겠네 / 不妨懷古醉春醪
큰 바다가 아스라하여 바라보니 끝없어라 / 巨浸茫茫望不窮
천지가 장막처럼 둘러싼 걸 비로소 알겠네 / 始知天地似帲幪
천리 아득한 바다 물결은 청동 거울 같고 / 千里海浪靑銅鏡
만 그루 산다는 벽옥의 떨기 모양이로다 / 萬樹山茶碧玉叢
좌우에 열 지은 미인들은 많기도 하여라 / 左右繽紛羅粉黛
고금에 여기 오른 영웅은 그 몇이었던고 / 古今登眺幾英雄
나는 와서 이 놀이가 늦은 걸 문득 한하노니 / 我來却恨玆遊晩
붉게 핀 눈 속의 동백꽃을 못 봤기 때문일세 / 未見繁花雪裏紅
* 신시(蜃市) : 신기루, * 고운(孤雲) ; 최치원,
* 부상(扶桑) : 해 돋는 곳, * 마도(馬島) :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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