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
전주 풍남문 豊南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4. 4. 17:19
풍남문 豊南門. 전주시 전동에 있는 옛 전주읍성의 남문으로 보물 308호. 전주는 조선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풍패는 한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풍(豐)은 중국의 현명(縣名)이고 패(沛)는 중국의 군명(郡名)으로서 한나라의 건국 시조 유방이 패군(沛郡) 풍현(豐縣) 중양리(中陽里) 출신이었던 까닭에, 풍패는 건국 시조 또는 제왕의 고향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전주를 풍패지향([風沛之鄕)이라 부른 것이다. 마침 보수중이어서 외관만 둘러 보는 아쉬움이 있았다. 풍남문은 임란 때 파괴되었으며, 176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관찰사 홍낙인(洪樂仁)이 중수하였다. 1층이 정면 3칸, 측면 3칸, 2층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층문루(重層門樓)의 팔작지붕이다. 석축기대(石築基臺) 중앙..
-
산청 남사예담촌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3. 19. 15:55
전망대 남학정(南鶴亭)에서 보는 남사마을 파노라마 남호정사(南湖精舍)의 이씨매(李氏梅), 기골이 장대한 장부를 닮은 백매, 고가(古家)는 경남문화재자료 118호.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1700년대 건물이 안채,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가 ㅁ자형인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뒷편은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삼신할머니회화나무다. 하씨고가 원정매(元正梅), 진양하씨, 수령 670년 원목은 2007년 고사하고 뿌리에서 자란 후계목이다. 사직공파 하즙(河楫)이 심은 것으로 그의 시호(諡號)인 원정 (元正)에서 비롯되었다. 흔히 남사예담촌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를 산청3매라 부른다. 元正旧廬 (농막, 오두막 려) 현액은 석파노인 즉 대원군 의 글씨다. 사양정사(泗陽精舍), 경남문화재자료 45..
-
종묘(宗廟)엘 가보자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3. 2. 17:58
홍화문(弘化門). 창경궁의 정문으로 1483년(성종 14년) 창경궁을 지을때 조화를 넓힌다는 뜻이다. 이름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지었는데, 《서경》 〈주서(周書)〉의 貳公弘化, 寅亮天地, 弼予一人, 즉 공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弘化] 천지를 공경하여 밝혀서 나 한사람을 보필한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년)에 다시 짓고 이후 중수되었다. 보물384호. 다포식 팔작지붕 형태의 명정문(明政門) 은 창경궁 외전(外殿)의 중문(中門)이며 행각은 문의 좌우로 연결되는 회랑이다. 행각의 앞면 중앙에 있는 명정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행각은 모두 복랑(複廊)으로 2칸이며 기둥 위에는 새 날개 형태의 장식(裝飾)인 익공..
-
예산 추사고택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2. 27. 23:24
추사체의 진수인 추사의 글씨와 세한도를 새긴 기념탑. 예전에 못보던 것이니 최근에 세웠을 것이다. 화법유장강만리(畵法有長江萬里) 서세여고송일지(書勢如孤松一枝) 글자와 세한도가가 새겨져 있다. 글자의 뜻은 화법은 장강 만리에 있고 서법은 외로운 소나무의 한 가지와 같다. 추사고택. 충남 유형문화재43호, 석년(石年)은 추사가 직접 제작했다고 전하는 해시계다. 모란이 필때 다시 오자는 아쉬움의 말들이 터져 나온다. 죽로지실(竹爐之室) 竹爐는 화로의 겉이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로 감싼 화로. 전서와 예서의 혼합, 글자로 이루어진 그림 즉 타이포그라피typography, 竹은 대와 죽순, 爐에서 盧는 그릇, 그릇 안에 작은 불火을 담았다. 爐는 주전자가 있는 복층 화로의 형상이다, 室은 육각형 창이 활짝 열린 단..
-
국립공주박물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 11. 20:37
무령왕의장례 특별전, 올해는 백제의 무령왕武寧王(재위501~523)이 62세로 돌아가신 지 1500년이 되는 해이다. 무령왕은 기울어 가던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선포한 왕이었다. 왕의 죽음은 나라의 위기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를 이은 아들 성왕聖王(재위523~554)은 흔들림 없이 왕위를 안정적으로 이어나갔다. 그 첫걸음은 바로 아버지 무령왕의 장례를 빈틈없이 치르는 것이었다. 성왕은 무령왕이 돌아가신 523년 5월 7일부터 왕릉에 모시는 525년 8월 12일까지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장례식을 주관했다. 장례 기간 동안 성왕은 후계자로서 권위를 다져가고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특별전시는 성왕이 치른 3년 동안의 장례식을 소개한다. 최고의 국가 행사를 치러내며 더 강한..
-
국립청주박물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12. 27. 21:30
금동광배(金銅光背), 고려시대, 사뇌사. 대형 광배조각으로 금동판에 불꽃무늬[火焰文]등을 투조하였다. 가장자리를 가위질로 불꽃무늬 등을 나타내고 한쪽 방향에서 거칠게 투조하여 가장자리가 밀려나 있다. 화불을 안치한 것으로 보이는 화염판과 반구형을 양쪽에서 서로 결합시킨 후 불꽃무늬를 배치한 장식품도 있다. 일부는 금동판을 서로 맞붙인 후 금동띠로 고정시켰다. 감로도(甘露圖, 감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함), 조선1649년, 금산 보석사, 복제품, 이귀도에 떨어진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의식을 베푸는 장면이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그렸다. 우란분재, 수륙재, 천도재 때 사용하였다. 상단에는 여러 부처와 보살이 내려오고, 중단에는 음식을 베풀고, 하단에는 현실속 재난을 묘사하였다. 중앙에 불을 뿜는 아귀는 구원의..
-
경주 대릉원(慶州 大陵園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10. 31. 14:19
경주 대릉원 일원 (慶州 大陵園 一圓), 본래 사적 경주노동리고분군, 사적 경주노서리고분, 사적 경주황남리고분군, 사적 경주황오리고분군, 사적 경주인왕리고분군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경주 평야 한복판에 서로 인접해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통합하여 재지정하였다. 대릉원이란 이름은 미추왕(味鄒王)을 대릉(大陵竹長陵)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서 딴 것이다. 총면적은 12만 5400평으로, 신라시대의 왕·왕비·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이고 봉문이 없어진 작은 무덤도 있다.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있다.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밤이 찾아오나 보다. 전세버스 창너머로 신라..
-
외암민속마을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10. 30. 12:27
외암마을 조선 경종 3년(1723년) 이간(李柬, 1677~1727)이 쓴 ‘외암기(巍巖記’에 마을 이름을 ‘외암(巍巖)’으로 기록한 사실이 있으며, 이간은 설화산(雪華山, 441m)의 우뚝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으며 마을 이름도 외암(外巖)이라 불렀고, 일제 때부터 획수가 적은 외암(外岩)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외암의 스승은 송시열 송준길의 제자 로 알려진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이며 설화산은 본래 설아산(雪峩山)이었다. 벼베기 체험 가마솥에 고구마 찌기 탈곡기 벼훌치기 사물과 버나(리기, 버나잽이가 공중 높이 던졌다가 받아돌리는 던질사위(공중사위, 허공잽이)를 하고 있다. 버나의 한자어는 전접(돌릴 转, 접시 碟)이다. 버나는 우리말 같은데... 키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