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
석은 김여온(石隱 金汝溫)의 묘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5. 1. 12. 22:14
임란시 의병장 석은 김여온(石隱 金汝溫, 1550-1592) 묘역. 문화재자료 16호. 공주 계룡면 노포리에서 태어나 선무랑(宣務郞), 의영고주부(義盈庫 主簿), 한림원 한림(翰林院 翰林)으로 있다가 임란이 일어나자 곽자방(郭自防)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규(靈圭)의 승군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되찾았다. 전라도로 진격중 금산전투에서 1592년(선조25) 순국하였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여 괴곡동 산12에 초혼장(招魂葬)을 지냈다. 초혼장(招魂葬)이란 구천을 떠도는 죽은이의 혼(魂)을 불러 장례를 치른 것이니 가묘(假墓)라는 뜻이다. 조선 의영고주부(義盈庫 主簿)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 석은 김여온의 묘비. 1643-1645년(인조 21-23) 경상좌수사를 역임한 순백 김여온(順白 金汝溫)과는 동명이인이다.
-
단묘(檀廟)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5. 1. 3. 22:04
남은 일력 한 이파리가 찬바람에 팔랑거리는 날 대전 원정림동의 단묘(檀廟)를 찾았다, 순종떄 평안감사 지낸 조충현(趙忠顯)의 손자인 조병호趙柄鎬,1914∼2005)가 진잠에 단군전을 세운 남지훈(南芝薰, 1918~1997)과 결혼하고, 계룡시 신도안으로 확장하여 단묘를 세웠으나 1984년 육군본부 들어서면서 정림동으로 이주하였다. 동학교주가 세운 수운교는 살아남았는데 국조를 모시는 단묘는 쫒겨났다. 조선시조신성황제묘정비 세우고 삼일신고와 단군팔조교를 새겼다. 1993년 단묘를 대전대학에 기증하였으나 대학측의 관리소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천절(御天節, 단군승하일인 음력 3월 15일)과 개천절(음력 10월 3일)에 제를 지낸다. 또다른 단묘(檀廟)는 독립운동가 김재형(金在衡, 1890~1966)이..
-
수운교 水雲敎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2. 24. 21:34
갑작스런 영하의 날씨지만 상쾌하다 수운교 솔숲을 걸으니.범종각과 광덕문, 문화재 제335호 수운교 종각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된 범종. 종각은 육각형 평면에 육모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 아래에는 다포식 공포와 함꼐 화려한 단청이 장식되어 있다. 범종은 한국 전쟁 때 사용된 탄피를 녹여 만든 것으로 범종 겉면에는 '금룡산 36도솔천 범종'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육모정의 종각에는 「금룡산 도솔천 범종」이라 명명한 대형 종이 현종되었는데, 범종은 매일 새벽, 정오, 저녁 3회 타종한다. 육모정의 종각은 외 11포, 내 15포의 포집으로 최고 걸작의 건물이다.광덕문(廣德門) 지붕의 잡상(雜像). 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에 의하면,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
강진 백운동원림(白雲洞園林)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2. 6. 22:12
백운동(白雲洞) 원림.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李聃老, 1627~1701)가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계곡 옆 바위에 '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정원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온다. 2019년 명승 제115호로 지정. 후대에 이 평천(平泉)을 파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며,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훌륭한 자제가 아니다. 백운동은(白雲洞隱) 이담로(1627∼1701)는 손자 이언길(1684∼1767)에게 당나라 이덕유(李德裕)..
-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2. 3. 20:38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병마절도사가 있던 영문(營門)으로 지금의 육군본부 정도일까.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2007년 개관하였다. 네델란드 호르쿰 출생의 헨드릭 하멜, 동인도회사원으로 무역을 위해 16653년 일본 나가사끼로 향하던 중 제주에 표류되고 효종을 만났으나 강진과 여수로 유배를 당하고 13년간을 조선에서 생활한다. 48명의 ‘스페르베르 호’ 선원은 일본을 통해 탈출하여 귀향하지만 그 사이 선원은 16명으로 줄었다.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하멜보고서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
-
청도 운림고택(雲林古宅)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0. 24. 22:19
전세버스 창문을 통해서 내다본 청도 임당리. 문화재 안내판에는 박경신과 두 아들 박지남, 박철남 삼부자가 의병에 참가한 충절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임호서원과 김씨고택(내시 김일준 통정대부, 중요민속문화재245호)을 소개하고 있다. 내관(內官)은 조선 시대에, 내시부에 속하여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남자로 모두 거세된 사람이었다. 부인을 들인 뒤 입양한 양자를 다시 궁중으로 들여보내 내시 생활을 하도록 하면서 대를 이은 것이다. 조선 후기에 궁중 내시(宮中 內侍)로 운림고택(雲林古宅)은 19세기 후반 15대 내시로 종2품 상선의 품계를 받은 운림 김병익(金秉翼, 1842~1925)이 건립했다. 하여 운림고택이라고 소개된 곳도 있으며, 혹은 정3품 통정대부에 올랐던 16대 내시 김일준..
-
청도 운강고택(雲岡故宅)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0. 24. 21:02
청도에 섶마리한옥마을(신지리한옥마을)을 찾은 연유는 운강고택(雲岡故宅)과 만화정을 보기 위해서다. 섶마리는 섶다리가 있던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逍遙堂(소요당) 朴河淡(박하담, 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인데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밀양박씨 집성촌이 된 것이다. 운강고택의 입구는 화방벽(火防壁)이다. 건물 안에 불이 났을 때 그 불길이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흙돌담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와 어울려 가을 정취를 뿜어낸다. 운강고택은 순조 9년(1809)에 朴廷周(박정주, 1789∼1850)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으로 雲岡(운강) 朴時默(박시묵)이 순조 24년(1824)에 중건하고 1905년 朴淳炳(박순병)이 다시 중수하였다...
-
연산 백중놀이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8. 30. 11:00
연산백중놀이는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이다.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서석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처음 시작되어 500여년이 넘는 전통을 지녔다. 1481년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 당시 연산면의 27개 마을 주민들이 김국광의 묘소를 참배한 후 크게 난장을 트고 대동놀이를 편 것이 그 시초였다. 그때 백중날은 농사가 끝나 머슴들이 쉰다고 하여 ‘머슴날’이라고도 했다. 이날 음식을 차려놓고 놀던 풍속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김국광의 후손들이 연산면 일대에서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백중놀이는 크게 성해졌다. 한 때는 연산을 오가는 길손은 물론 전국의 한량들까지 모여들어 함께 즐기는 축제로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놀이비용을 전담한 광산 김씨 친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