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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선도의 세연정(洗然亭)
    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12. 5. 22. 13:06

     

     

     

     

     

     

    고산 윤선도가 67세때인 1653(효종4) 마련한 세연정(洗然亭)이다.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甫吉島)에 머물면서 지은 정자로 날이 좋은 날이면 노비들에게 술과 안주를 마차에 가득 싣게 하고 기생들을 거느리고 나와 술을 한 잔 걸치고서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부르게 했던 곳이다.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이며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는 언제 보나?! 보길도는 윤선도가 청에 항복했단 임금의 소식을 듣고 제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자리잡은 곳이다. 우암이 숙종때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탄핵되어 제주로 가다가 풍랑을 피해 들른 곳이기고 하다.

      

     

    동천석실* / 김인강

     

     

     짊어진 고뇌 모두 풀고

    하늘로 통하는 자리에 앉아

    푸르게 단장한 세상을

    멍하니 내려다보네

    땅에서 끌어 올린 생각들

    도르래 굴려 보지만

     

    어부의 삶을 노래한 심상을

    따라 갈 길이 없네

    차바위에 퍼지는 향기

    잿빛 구름도 머물고

    멀리 보이는 부용동 숲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네

    신선의 삶이 따로 없는

    석실의 문을 열고

    보이지 않는 님의 마음을 좇아

    한없이 동천에 머물고 싶네

     

    * 洞天石室 -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길도 산중턱 절벽 바위 위에 있는 한 칸 집의 조그만 정자.

     

     

    예송리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제40호. 300여년전 동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상록활엽수림을 조성하였다. 수종은 후박나무, 모밀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종가시나무, 섬회양목 등이 있고, 가끔 송악이 얽혀 있다. 팽나무, 작살나무, 꾸지뽕나무, 찔레꽃, 누리장나무, 졸참나무, 상동나무 등의 낙엽수종도 자라고 있다.

     

     

    청환석(靑丸石)이 파도에 씻겨 닳고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이 폭 50m 길이 2km 정도의 명품해변을 이루고 있다. 

     

     

    몽돌 / 홍영수

     

     

    햇살에 걸린 은빛 파도로

    돌무늬에 시간의 눈금을 새기면서

    얼마나 구도의 길을 걸었기에

    손금 지워진 어부처럼

    지문마저 지워져 반질거릴까.

     

    낮게 임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깻돌, 콩돌, 몽돌이 되어

    알몸 맨살 버무리며

    철썩이는 파도의 물무늬로 미끈거릴까.

     

    평생 누워 참선하면서

    바다 소리 공양에 귀 기울이며

    얼마나 잘 익은 득음을 했기에

    수평선 너머 태풍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무한 고통의 탯줄을 끊은

    저 작은 생명력, 그 앞에선

    파도마저 차마 소리 죽여 왔다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잘 마모되어 간다는 것.

    얼마나 더 마모되어야

    내 안에 몽돌 하나 키울 수 있을까.

     

    김만중 http://ktk84378837.tistory.com/4465 부용 묘 http://ktk84378837.tistory.com/4249 안축 http://ktk84378837.tistory.com/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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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길동생가 http://ktk84378837.tistory.com/2479 신사임당 http://ktk84378837.tistory.com/3103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춘사(春詞)  윤선도(尹善道)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해 비췬다
    배떠라 배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江村) 온갓 고지 먼 비치 더옥 됴타

    날이 덥도다 믈 우희 고기 떳다
    닫드러라 닫드러라
    갈며기 둘식세식 오락가락 하느고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낫대는 쥐여잇다 탁쥬ㅅ병(濁 甁) 시럿나냐

    동풍(東風)이 건듣 부니 믉결이 고이 닌다
    돋다라라 돋다라라

    동호(東胡)를 도라보며 셔호(西湖)로 가쟈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압뫼히 디나가고 뒷뫼히 나아온다

    우는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이어라 이어라
    어촌(漁村) 두어 집이 냇속의 나락들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말가한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뒤노나다

    고운 볃티 쬐얀는듸 믉결이 기름갓다
    이어라 이어라

    그믈을 주어듀라 낙시를 노흘일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탁영가(濯?歌)의 흥(興)이 나니 고기도 니즐로다

    셕양(夕陽)이 빗겨시니 그만하야 도라가쟈
    돋디여라 돋디여라
    안류(岸柳) 뎡화(?化)는 고비고비 새롭고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삼공(三公)을 불리소냐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방초(防草)를 발와 보며 난지(蘭芷)도 뜨더보쟈
    배셰여라 배셰여라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시른 거시 므스것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갈 제는 바뿐이오 올 제는 달이로다

    취(醉)하야 누얻다가 여흘 아래 나리려다
    배매여라 배매여라
    락홍(落紅)이 흘러오니 도원(桃源)이 갓갑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세홍딘(人世紅?)이 언메나 가렷나니

    낙시줄 거더노코 봉창(?窓) 이 달을 보쟈
    닫디여라 닫디여라
    하마 밤들거냐 쟈규(子規)소리 말게 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나믄 흥(興)이 무궁(無窮)하니 갈 길흘 니젓땃다

    내일(來日)이 또 업스랴 봄밤이 몃덛새리
    배브텨라 배브텨라
    낫대로 막대삼고 시비(柴扉)를 차자보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 생애(漁父生涯)는 이렁구리 디낼로다


     孤山 尹善道 (1651년효종2년) 약력

    1, 1587년 6월 22일 한성부 동부 연화방(漢城府東部蓮花坊)에서 탄생.
    2, 6세때 학문(學問)시작하심.
    3, 8세때 1594년(선조27) 한성부남부 명례방종현에 있는 큰댁 숙부 유기(唯幾)관찰공(觀察公)에게 양자(養子)가심.
    4, 26세때 1613년(광해군4) 진사(進士)에 1등으로 합격하심.
    5,3 0세때 1616년(광해군8) 12월에 집권파(執權派) 의정(議政) 박승종(朴承宗)과 국척(國戚) 류희구(柳希舊)의 전권란정(專權亂政)을 탄핵상소(上疏)를 한 이유로 31세 2월에 함경도 경원(咸鏡道慶源)으로 귀양가셨다가. 32세때 다시 경상도 기장(機長)으로 이배(移配) 되심.
    6, 37세때 1623년(인조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귀양에서 8년만에 풀려나심.
    7, 42세때 1628년(인조6) 봄 별시문과(別試文科)의 초시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심.이조판서 장유(張維)의 천거로 3월에 봉림대군(鳳林大君 = 孝宗)과 인평대군(麟坪大君) 두 왕자의 사부(師傅)가 됨.
    8, 43세때 1629(인조7) 공조좌랑(佐郞)에서 공조정랑(工曹正郞)에 오름.
    9, 47세때 1633년(인조11) 예조정랑(禮曹正郞), 관서경시관(關西京試官),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이 되심.
    10, 49세때 1635년(인조13) 성주현감(星州縣監)에서 해남(海南)으로 돌아옴.
    11, 50세때 1636년(인조14) 12월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향읍자제(鄕邑子弟)의병(義兵)을 모집하고 가동(家童)수백을 내어 군량과 전함을 준비 해남에서 강도(江都=강화도)로 떠남.
    12, 51세때 1637년(인조15) 정월 강도에 도착하려 했으나 강도는 이미 함락되고 그후 취욕의 강화를 하자 통분을 금치 못하여 탐라(耽羅)로 가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 탐라로 가지 못하고 2월에 보길도(甫吉島) 대풍(待風) 구미에 상륙하여 보니 산수석천(山水石泉)이 절승하여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지어 정착하고 낙서재(樂書齋)를 축조하였다.
    13, 52세때 1638년(인조16) 6월에 경상도 영덕(慶尙道 盈德)으로 귀양가심.
    14, 53세때 1639년(인조17) 2월에 귀양에서 풀러나 대동찰방(大同察訪)을 받으셨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않으므로 이를 이유로 다시 유배당함.
    15, 56세때 1642년(인조20) 해남 금쇄동(海南 金鎖洞)에서 산중신곡(山中新曲) 19수(五友歌 6수 포함)를 지으심.
    16, 60세때 1646년(인조24) 육국(肉局)의 징소(徵召)를 불응함에 비방의 소리가 일어나자 다시 보길도로 들어가심.
    17, 65세때 1651년(효종2)가을 보길도 부용동에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수 지으심.
    18, 66세때 1652(효종3) 17년만에 상경 8월에 승지(承旨)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올랐다가 10월에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심.
    19, 67세때 1653(효종4) 2월에 보길도 부용동에 무민당(無憫堂) 정성암(靜成菴)을 짓고 후학(後學)을 가르치면서 노화도 구석리(久石里, 久木里, 石中里) 제방농장(堤防農場) 약 60정(18만평)과 저수지 약1,1정(3,300평)을 개간하여 영농하게 하고 보길도 부황리에 정자와 연못을 축조하여 산수와 자연의 풍류를 즐기심.
    20, 71세때 1657년(효종8) 11월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됨.
    21, 72세때 1658년(효종9)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오르고 양주고산(楊州孤山에 초사(草舍)를 짓고 머므름.
    22, 73세때 1659년(효종10) 효종 승하하고. 현종이 즉위하여 효종 산능(山陵=묘지)문제 및 조대비 복제문제(趙大妃 服制問題)로 송시열(宋時烈=尤菴)과 논쟁이 일어남.
    23, 74세때 1660년(헌종1) 6월에 함경도 삼수(咸鏡道 三水)로 귀양가심.
    24, 79세때 1665년(헌종6) 삼수에서 전라도 광양(光陽)으로 천배(遷配) 됨. 3월에 떠나 6월에 도착.
    25, 81세때 1667년(현종8) 7월에 귀양에서 풀려나 보길도 부용동으로 들어가심.
    26, 85세 1671년(현종12) 6월 11일 보길도 부용동 낙서재(甫吉島 芙蓉洞 樂書齋)에서 수(壽) 85세로 기세(棄世)하시고 공의 유지(遺志)를 따라 이해 9월에 해남군 현산면 문소동 금쇄산성 아래(海南郡 縣山面 聞簫洞 金鎖山城下)에 묻히심.
    27, 1675년(肅宗1) 2월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심.
    28, 1678년(숙종8) 9월 충헌(忠憲 = 危身奉上曰 忠, 博文多能曰 憲)의 시호(諡號)가 내려짐.

    해남윤씨 종친회카페에 실린 윤선도 약력 cafe.daum.net/yunssi/9cMw/41?q=%EC%9C%A4%EC%84%A0%EB%8F%84%20%EC%95%BD%EB%A0%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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