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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 청풍서원 淸風書院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7. 12. 16. 20:04

    왼쪽은 길재의 유허비. 오른쪽은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 그래서 백세청풍비각이라 부른다. 

    황해도 해주에도 수양산이 있는 인연으로 청성묘(淸聖廟)와 백세청풍비를 그대로 모방해서 세웠다.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강당(三江講堂)에 윤목(15711629)이 설치한 백세청풍 편액이 있다.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1420~1489)를 기려 세운 채미정(采薇亭)에도 백세청풍 편액이 걸려 있다. 

    함양의 일두(정여창고택에도 백세청풍 편액이 걸려 있다.

    안동의 학봉(김성일)종택은 학봉 불천위 제사 때 백세청풍(百世淸風) 지주중류(砥柱中流)’ 탁본 병풍을 사용한다

     

    백세청풍비각의 측면.

     

    1928년 중수된 백세청풍비각의 후면.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 

    본래 백세청풍비는 중국 해주 수양산(首陽山)의 청성묘(淸廟)에 있는 주자의 글씨인데 백이숙제의 청풍한 기운이 백세까지 영원하라는 뜻이다.  

    청성묘는 백이숙제의 사당이며 수양사(首陽祠), 이제사(夷齊祠)라고 부른다. 

    ()나라 제후인 주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치려하자 백이와 숙제가 말렸으나 듣지 않고 은나라를 쳐서 천하를 차지해 버렸다

    이에 백이·숙제는 불의(不義)한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성삼문이 30세(1447년)에 이 청성묘 즉 이제묘를 지나며 지은 시가 있다.

     

    當年叩馬敢言非(당년고마감언비) 무왕(武王)의 말을 두드리며 옳지 않다 충고하니

    忠義堂堂日月輝(충의당당일월휘그 충의(忠義)는 당당하여 일월(日月)같이 빛나네

    草木亦霑周雨露(초목역점주우로그러나 초목 또한 주나라의 우로(雨露) 먹고살았으니

    愧君猶食首陽薇(괴군유식수양미수양산 고사리를 캐먹은 그대들을 부끄러워하네

      

    7년이 지나 국내에선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으나 김질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3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으며 남긴 절명시가 있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북 소리 목숨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머리 돌려보니 서산에 해 지려하네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저승길엔 한 채의 주막도 없으리니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까

     

    유허비.

    구미 선산이 고향인 야은 길재는 이곳 불이리 출신의 신씨와 결혼하였으며 증손자가 이 마을에 살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不二里)의 불이란 불사이군(不事二君)정신에서 유래된 것이다.

    길재의 탄생지인 구미 선산에는 묘소와 손수 심은 대나무밭이 있고 이미 금오서원(金烏書院)에 향사하고 있다.

    채미정(採薇亭)을 건축하였는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기에 이른 이름이다.

    낙동강변에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세워 길재의 절의를 사모하고 있었다.

    그가 초년에 시묘살이하였던 금산 부리에서는 1671(현종 12)에 불이사(不二祠)를 창건하여 1678(숙종 4)에 봉안하였다

     

    구미시 오태동에는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와 길재의 묘소, 청풍재(淸風齋), 오산서원 터 등이 있다

    중국 이제묘(夷齊廟)에 양청천(楊晴川)이 쓴 지주중류비를 1587(선조 20)에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1539~1601)모사하여 세운 비이다.

    비석 뒷면에는 유운룡의 동생인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이 쓴 음기가 있다.

    지주(砥柱)중국 허난성(河南省)의 동쪽 황허강(黃河江) 가운데 있는 산인데 격류 속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한다.

    난세에 처하여 의연하게 절개를 지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길재의 회고가비(懷古歌碑). 오백년을 이어온 고려 망국의 슬픔과 인생의 허무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동시대를 살며 정신적 동지로 살던 23세 위인 원천석의 회고가도 우월을 따질 수 없다.

    고려의 충신인 길재는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학맥을 이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유래지라고 새긴 청풍서원비. 충청남도가 생산하는 쌀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청풍명월이다.

     

    청풍서원과 1977년 박정희대통령이 쓴 청풍서원 현판.

    지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선정하였다. 

    파사헌정은 불교 삼론종의 삼론현의(三論玄義)에 실린 고사성어로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지난해에는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의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모두가 국정농단의 죄목으로 쫒겨난 박근혜의 정권에서 비롯된 말이니 어제의 정의가 오늘은 적폐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서원은 잠겨 있어 마을회관에 들어가 관리자를 물으니 어르신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추위나 녹이라며 따끈한 삼박자 커피와 지글지글 김치전과 무전은 물론 귤까지 내놓는다. 

    몸이 고드름 녹듯 녹아내리면서 정신이 몽롱해질 즈음 이장이 와 그는 열쇠를 맡기지 않고 일본 여행 중이라 불가하다는 전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시간은 더 따끈한 온돌방에서 엉덩이를 지지다가 나오는 데도 누구 한나 군소리는 커녕 더 있다 가라고 또 오라고 서운해 하신다.

     

    그렇게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나와 한 컷 담장 밖에서 본 청풍사는 저녁햇살이 더욱 차가와졌다.

    길재 유택은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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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가(懷古歌) / 길재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도읍지 : 고려의 서울 송도(개성)

     

     

    회고가(懷古歌) / 원천석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 개성시 송악산에 있는 고려시대의 궁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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