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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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海美邑城)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4. 12. 21:52
해미읍성 진남문(鎭南門), 조선초 태종17년(1417)-세종3년(1421)에 서해안 방어를 위해 축성되었으며 충청병마절도사가 지휘하던 곳이다.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읍성이다.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이지만 1,000여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잡혀와 고문 받던 순례지로 더 유명한듯 하다. 사적 116호. 조선시대 병장기 잘 가꾼 단풍나무 해미읍성 회화나무. 기념물172호, 충청도사투리로 호야나무, 선비를 상징하는 학자수(學子樹), 수령3백년 추정. 1790-1880년대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의 동쪽끝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으며, 철사줄이 박혀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폭풍에 부러진 곳이 부패되어 외과수술을 거쳐 보호되고 있다. 옥사(獄舍) 민가(民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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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왕곡(旺谷)마을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1. 27. 16:19
늦은 가을 찾아온 왕곡마을은 해안에서 내륙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으며 송지호와 해발 200m 야산 다섯 개에 둘러 쌓여 외부와 차단된 골 형태의 분지를 이룬다. 마을의 동쪽은 골무산(骨蕪山), 남동쪽 송지호, 남쪽 호근산(湖近山)과 제공산(濟孔山), 서쪽 진방산(唇防山), 북쪽 오음산(五音山)으로 막혀 있고 마을관통하는 왕곡천이 있다.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 은거한데서 연유한다. 이처럼 고려말, 조선초 이래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세월을 정주해온 전통 있는 마을이다. 중요민속자료 235호. 국가민속문화재 고성 왕곡마을 (高城 旺谷마을)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 검색 (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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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청간정(淸澗亭)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1. 25. 22:01
청간정(淸澗亭)을 싸고도는 명사(鳴沙), 오랜만에 만나보는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유의어 물비늘)에 눈이 멀겠다! 그 비밀의 해답은 아래 청간정중수기에서 찾을 수있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청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이다. 그런데 절벽 위 청간(淸澗)이 아닌 언덕 위에 있잖은가?! 현종 15년(1520)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기록이 있다. 1884년 갑신정변에 소실되었다가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金鎔集)의 발기로 지금의 자리에 재건하였다. 즉 바닷물과 바닷물 사이 기암절벽 위에 있던 청간정을 지금의 언덕 위에 옮겨짓게 된 것이다. 그 후 1980년 해체 복원하여 강원도유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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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청주박물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1. 20. 14:45
로비에 들어서면 승탑, 비지정문화재이면서 시대와 작가 미상인 승탑이 기단부가 결실된채 반가이 맞는다. 옆에 석인상도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 같은 친근한 인상으로 다가선다. 간돌검 (磨製石劍). 길이 37.0cm 검신(劍身)은 날을 양쪽에 세웠고 가운데 능이 있어 단면이 볼록렌즈 모양이다. 날은 매우 예리하며, 검신과 자루의 경계인 검코가 뚜렷하다. 자루는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고 끝에서 크게 휘어진다. 간돌검은 실생활용으로서 뿐만 아니라 죽은 이를 위해 만들어 함께 묻는 부장용으로 사용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이다. 청동검 토기 항아리 (土器壺) 여러면석기(多角面圓球), 구석기시대, 길이 11.0cm 규질암 자갈돌을 다듬어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자연면이 대부분 제거되었지만, 자연면이 일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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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 묘정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1. 15. 22:59
신채호기념관 天鼓頌(천고송)비 단재 신채호 영각 신채호,박자혜 부부 조각상 신채호사당앞 잣나무 신채호,박자혜 부부합장묘, 사당과 묘소의 위치는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길 249 대전 중구 문화동 서대전시민공원 한켠에 세워진 신채호 동상(19년12월 제막, 21년6월 촬영) 천고송天鼓頌 / 신채호申采浩 吾知鼓天鼓者 (오지고천고자) 나는 안다 하늘 북 두드리는 사람을 其能哀而怒矣 (기능애이노의) 슬프고 분노가 치솟는구나 哀聲悲怒聲壯 (애성비노성장) 슬픈 소리 비참하고 노한 소리 장엄하여 喚二千萬人起 (환이천만인기) 이천만인을 불러일으키니 乃毅然決死心 (내의연결사심) 이내 의연히 죽음을 다짐한다 光祖宗復疆土 (광조종복강토) 조상을 빛내고 강토를 되찾아 取盡夷島血來 (취진이도혈래) 섬 오랑캐의 피를 모조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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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영릉(英陵)과 영릉(寧陵)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1. 3. 16:46
홍살문(홍전문=紅箭門, 紅門) 왼쪽 길은 향로(香路)라 하여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들어가는 길이며, 오른쪽 길은 어로(御路)라 하여 제향을 드리러온 왕이 걷는 길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로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화살모양의 살대는 법도(法度)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며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다. 홍살문은 왕릉과 같은 묘지나 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되었다. 드물게 용주사나 동학사처럼 절에 있는 것도 있고 대구 약령시, 안동 시청 전정에 설치한 경우도 있다.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붉은 색과 창(枝槍) 모양은 벽사와 경의(敬意)의 의미가 있다. 홍살문은 인도의 스투파 입구에 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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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고택, 종가, 묘소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0. 8. 18:15
사계고택 현판, 현대서예가인 김응현(如初金膺顯)이 썼다. 사계고택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이 55세 되던 1602년(인조35)에 건립하여 정부인 순천김씨와 살았던 집이다.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별채, 곳간채, 광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있으며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 사랑채인 은농재(隱農齋)는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처음에는 초가형태였으나 지금은 기와로 지붕을 올렸다. 정면4칸과 측면2칸의 평면으로 구성하였고 배치도 당대 양반가의 일반적인 방법을 잘 따랐다. 그 후 사계의 8자인 규(두계공, 1606-1677)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체험관. 허씨부인 설화. 김장생의 7대조 할머니 양천허씨는 조선 태조때 대사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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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주암정(舟巖亭)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2. 10. 6. 22:01
뱃머리를 보아라, 영락없는 주암(舟巖)과 그 위에 의젓이 앉은 주암정(舟巖亭).주암정(舟巖亭). 조선 유학자 성균관 생원 주암 채익하(蔡翊夏1933~1675)를 기리기 위하여 1944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 마을이름인 웅창마을은 금천을 경계로 인천채(蔡)씨들의 집성촌인 이웃 산양면 현리마을과 함께 유교문화가 융성하던 곳이다. 주암(舟巖)은 배모양의 큰 바위가 언덕에 정박하여 오랫동안 매여 있는 모습이라 함. 채헌(蔡瀗)이 이름 한 석문구곡의 제2곡에 위치. 건물은 전면3칸 측면1칸반의 팔작지붕. 기단(보통35cm) 없이 막돌로 초석을 놓았고 마루높이도 43cm(보통90cm). 현재 후손인 채훈식이 관리하고 있다.채헌(蔡瀗)은 정조때 문신․ 자 계징(季澄), 호 근품재(近品齋). 영조29년(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