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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 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과 고란사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4. 11. 12. 21:46

     

    삼충사 - 백제충신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사당

     

    군창지.

     

    군창지 맞은편의 영일루.

    석파정 https://ktk84378837.tistory.com/4956 영일루 http://ktk84378837.tistory.com/6188 옥류각 http://ktk84378837.tistory.com/8279 함벽정 http://ktk84378837.tistory.com/7148

     

    고란사(高蘭寺, 皐蘭寺). 부소산(扶蘇山)에 있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된 것을 고려시대에 백제의 후예들이 삼천궁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중창하여 고란사(高蘭寺)라 하였다. 이곳에서 처음 발견되어 고란초 이름이 유래된 식물도 있고(고란초 https://ktk84378837.tistory.com/4139), 

     

    辜蘭寺(고란사) / 徐居正(서거정, 1420~1488)

     

    皐蘭古寺皐蘭生(고란고사고란생) 고란사 옛 절에는 고란초가 자라고

    蘭葉蘭花帶月明(난여난화대월명) 난잎과 난꽃은 달빛 받아 더욱 밝다

    山鳥亦知亡國恨(산조역지망국한) 산새들도 나라 잃은 설움을 아는지

    蘭皐完血至今鳴(난고완혈지금명) 고란초 만발한 오늘밤을 울어 옌다

     

     

    高蘭暮磬(고란모경) /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

     

    水闊煙深沙渚遙(수활연심사저요) 강 폭은 넓고 연무는 긴 저 멀리 모래톱에는

    祗今樵牧認前朝(지금초목인전조) 지금까지 초동목수도 전조였음을 알고 있네. 

    山僧不管興亡事(산승불관흥망사) 산에 산 스님은 국가 흥망 상관 없다던가

    淸磬一聲雲外飄(청경일성운외표) 드맑은 풍경소리 구름 밖을 날아가네

     

    낙화암(落花巖)에 올라앉은 낙화정.

    조선 전기의 기생으로 생몰연대가 미상이나 호를 설죽(雪竹)이라 하는 취선(翠仙)이 고란사에 묵으며 지은 유명한 백마강 회고시가 있다. 취선은 1504(연산군10)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등을 지낸 무신 김철손(金哲孫)의 소실이다. 낙화정이 세워지기 전 춘원 이광수도 찾아와 읊은 낙화암(落花巖)도 있다.

     

     

     백마강 회고 (白馬江懷古)  /  취선(翠仙) 

     

    晩泊皐蘭寺(만박고란사)  해 저물어 고란사에 묵게 되어

    西風獨倚樓(서풍독의루) 가을바람에 혼자 다락에 기대 있네.

    龍亡江萬古(용망강만고)  용이 떠났으나 만고에 강물은 흐르고 

    花落月千秋(화락월천추) 꽃은 떨어졌는데 천추에 달이 밝네

    - (大東詩選 卷12)

     

     

    낙화암(落花巖) / 춘원 이광수

     

    사자수 내린물에 석양이 빗길 제

    버들꽃 날리는데 낙하암 이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있는 나그네는 창자를 끊노라

    낙하암 낙하암 왜 말이 없느냐

     

    백마강에서 본 고란사(皐蘭寺). 고란초는 고란사 뒤켠 바위절벽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다.

    사적 제5호. 부소산성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둘레는 2,200m이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泗沘)를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봉우리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되었다가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현재의 규모로 확장,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성은 사비천도 이후 백제 멸망시까지 국도의 중심산성으로, 인근의 청산성(靑山城)·청마산성(靑馬山城) 등의 보조산성 등과 함께 왕도 방어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금강의 부여쪽 이름인 백마강의 유래는 신라와 연합군을 형성한 소정방으로부터 시작된다. 13만 대군으로 사비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안개가 자욱하고 풍랑이 거세어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점쟁이의 말인즉 의자왕의 부친인 무왕이 호국용신이 되어 조화를 부린다는 것이다. 이에 소정방은 무왕이 좋아하던 백말의 머리를 미끼로 하여 기어이 용을 낚아내었다. 드디어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고 당나라 군사들은 이 강을 건너 백제를 함락시킬 수 있었다. 이 후로 사람들은 사자수 혹은 사비강을 백마강으로 고쳐 불렀다. 소정방이 앉아서 용을 낚았다는 바위는 조룡대라고 부르며,  이 바위에는 용이 끌려올라오면서 발톱자국을 남겨서 그 자국이 남아있다고 전한다.

    고란초 http://ktk84378837.tistory.com/4139 http://ktk84378837.tistory.com/87 http://ktk84378837.tistory.com/1676 

     

     

    꿈꾸는 백마강 / 조명암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려

     

     

    부소산성을 찾아서  /  박태강

     

    백마강 흐르는 물 부소산을 감돌고
    펼쳐진 넓은 옥토 풍요의 요람이요
    백제국 도읍지 사비성이 으뜸이라
     
    백화정 아름다움 가이없는 절경이고
    나라잃은 삼천궁여 얼마나 한스러워
    백마강에 낙화암 꽃이되어 나렸을까
     
    낙화암 돌개단을 말없이 찿아들면
    숨은듯 가리운듯  천년고찰 고란사
    고란초 약수품은 절벽 아름도하다
     
    성충 홍수 곧은충절 사비성에 있고
    계백장군 높은기개 황산벌에 있어
    만세에 높은 충절 삼충사에 높이모셔
     
    가는이 오는이 발걸음 여미고
    목숨 바쳐 지켜온 충심 본받아
    나라위한 충성심 깊이 간직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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