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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사성암(四聖庵)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4. 3. 23. 21:08

     

     

     

    약사전인 유리광전(琉璃光殿)

     

     

     

     

     

     

     

     

    사성암은 구례 오산(鰲山)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화엄사의 말사로서,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고 난 이듬해에 이곳 사성암(四聖庵)을 창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오산사(鰲山寺)로 불리었으나, 그 후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등 4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암(四聖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사성암의 기록에 의하면 오산이 금자라 형국이어서금오산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약사전'과 바위 위에 살짝 얹어 놓은 듯 단아한 '대웅전' 등 모든 구조물이 산과 하나되어 고운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돌면 아래로 섬진강이 돌아 흐르고 구례읍과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성암은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33'에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명승 제111호이기도 하다. 

    사성암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과 구례읍 전경.

    육당 최남선의 <심춘순례>에도 오산과 사성암 이야기가 전한다.

    오른쪽 기슭으로 좆아 내려가다가 오산(鰲山)을 바라고 산길이 들어섰다. 이름만 길이요 게다가 가파르매 가는 것보다 쉬는 동안이 더 길었다. 개울은 고사하고 샘 하나 그늘 하나 제법 한 것 없는 빡빡한 길을 5리나 너머 올라가서 커다란 바위의 틈틈으로 돌아 들어가매 바위 아래 조그만 암자를 붙인 것이 정상이었다. 사성암(四聖庵)이라 하여 작기는 하여도 오래 전부터 이름 있는 곳이니 원효, 의상, 도선 이하로 진각(眞覺), 원감(圓鑑) 등이 다 여기 안선(安禪)이였다. 

    대개 오산은 백운산(白雲山)의 서북쪽 갈래가 섬진강(蟾津江)을 만나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우뚝 솟은 봉우리니 암자의 앞 뒤 좌우가 다 석벽이요 돌아가면서 대도 있고 굴도 있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틈서리도 있어 그 자체만도 이미 한 기관이라 하겠는데 더군다나 구례의 평야는 쾌활한 뜻으로 섬진강의 긴 물은 먼 맛으로 두류(頭流)의 연 이은 봉우리는 웅혼한 기운으로 이 세 가지가 합하여 일대 장려한 안계(眼界)를 만들어서 발아래에 벌려 놓았다.

     

    (추가)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426

    2020년 8월 시간당 400mm를 쏟아붓던 여름 장마로 섬진강이 넘쳐 홍수가 났다. 홍수를 피해 수십마리 소가 사성암 높은 산길을 뚜벅뚜벅 올라왔다. 진관이란 스님시인이 사성암에 참배하려온 소 거사 소 보살 시를 썼다. 심우도(尋牛圖)를 생각나게 한다.

     

     

    소 거사 소 보살  /  진관스님

     

     

    부처님이시여

    홍수로 소거사 소 보살이

    사성암에 올라왔는데

     

    참으로 소중한 이야기

    먼 훗날에 기억해야 할

    설법의 이야기를

    이 시대에 전해주고 있다는

    그러한 인연을 기억하게

    하는 섬진강 뚝이 무너진 이후

     

    구례 사성암에

    소 거사 소보살이

    부처님 전에 참배하려고

    그 험난한 길을 달려왔네

     

    사성암에 찾아온 소 거사님과 소보살님에게

    어떠한 인연의 몸으로 왔는지

    깊은 산간에 앉아서

    화두를 들고 있는

    수행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연

     

    인연이 중요한데

    오늘의 인연을

    기억하게 하자구나

     

    다음세상에는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타어나

    사성암에 수행자로

    태어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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