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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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교 沃川鄕校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1. 5. 18. 18:51
옥천향교 입구. 홍살문 우측에 빛바랜 하마비(下馬碑)가 보인다. 옥천향교 명륜당은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에 따라 명륜당(유교교육을 위한 강당)이 앞에 대성전이 뒤에 배치되었다. 옥천향교는 조선 태조7년(1398)에, 명륜당은 세종22년(1440)지었다가 임란때 소실되었다가 이후 수차례 중수하였다. 좌우 방 아래벽 네모난 구멍은 뜬구들로 보인다. 소재지는 옥천읍 교동리 320 홍도당(弘道堂)은 유생들의 거처였다. 현판은 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송시열의 후손 회당(晦堂) 송지헌(宋之憲, 1872~1934)의 글씨다. 송지헌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되어 있다. 사주문(四柱門) 들어가면 창고를 지나고 왼편은 고직사(庫直舍). 관리인의 거처인 고직사(庫直舍) 대성전(大成殿) 계단석 중간에 석조물 뒷부분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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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향교 公州鄕校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1. 4. 29. 23:09
공주향교는 충청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웅진동 숭산 밑에 창건되었다. 그러다가 1623년(인조1년)에 현 위치인 교동으로 이건하였다. 공주향교 홍살문 오른쪽에 오강표 순절지라 소개되어 있다. 오강표(吳剛杓,1843~1910)는 공주지역의 대표적 유림으로 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접하고 을사오적 처단상소를 올렸으나 무산되자 1차 자결을 시도하였다. 5년 뒤 1910년 경술국치에 나라 잃은 선비로 살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곳 공주향교 강학루에 목을 매어 순국하였다. 일제에 의해 강학루는 철거되었다. 명륜당의 앞면과 뒷면, 공주향교 명륜당 공주향교 명륜당 현판, 신안주희(新案朱憙)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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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손씨 수정재(水晶齋)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2. 20. 21:09
솟을대문은 효원문(孝源門)이다. 수정재(水晶齋) 밀양손씨택승공파종중의 재사(齋舍)로, 재실 뒷산을 수정암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1945년 폭격으로 불타버리고, 1966년 문중의 결의에 따라 재건축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두었고, 양 끝으로 1칸씩 온돌방을 두었다. 제명실(齊明室) 동재 귀연재(歸燕齋) 서재, 손석의 장인인 임건이 현재 수정재 뒤의 묘소 자리를 일컬어 ''봄에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는 형국''이라 하였다는데서 유래한다. 수정재를 있게 한 역승공(黃江道驛丞) 손석의 장인은 고려말에 전서(典書)를 지낸 임건(林騫)이다. 충주인 박진은 임건의 큰사위로 손석과는 동서지간이 되었다. 임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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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공원 & 출판기념회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2. 8. 21:13
효문화진흥원 앞에는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시비가 버티고 있다. 16수 연시조 중 2수에 해당한다.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던 봉건시대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을 현대적 해석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부위자강(父爲子綱)과 부자유친(父子有親)의 테두리가 어느만큼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 ktk84378837.tistory.com/4449 숙박시설인 효문화마을은 3층에 단체용 11평짜리(6만8천원)와 2층에 가족용 7평짜리(4만2천원) 객실이 있다. 한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데 소박하고 정겹고 깨끗하고 전망이 있어 가성비가 좋다. 강당이며 세미나실도 갖추고 있다. 식사 한끼는 4천원이다. 행정구역이 중구인이면 5천원 할인이 있다. www.djjunggu.go.kr/html/hyo/jangsu/jangsu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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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정경세 종가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1. 20. 21:33
흥암서원(興岩書院) 돌 때부터 배가 출출했다. 배고픔을 지천통나뭇집에서 해결하고 나서니 솔바람도 좋은데 사이사이로 때깔을 잃어가는 단풍이 아름다우나 애처롭다. 솟을대문, 안쪽에서 보니 와송(瓦松)이 잔뜩 향을 피웠다가 후생을 위해 말라가고 있다. 우복종가 산수헌(山水軒) 종부의 넉넉하고 수줍은 웃음은 3년 전에도 아름다웠다. 바싹 마른 시래기에서 구수한 향이 바스락거린다. 청간정(聽澗亭)이라 이름 짓고 시냇물소리를 벗삼아 독서하던 계정(溪亭), 달랑 1칸짜리 멋드러진 초옥이다. 우곡잡영 20절(愚谷雜詠二十絶)의 제11경인 계정은 사위인 송준길의 송준길행초동춘당필적(宋浚吉 行草 同春堂筆跡)에 필사되어 전해지고 있다. 시원한 대산루(對山樓)는 팔작지붕을 한 기와집으로 단층을 연결한 이층누각의 T자형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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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흥암서원(興巖書院)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1. 15. 17:12
흥암서원(興巖書院) 현액 진수당에 이양례 수필가(좌)와 강형일 시인(중)과 백제문화원 부원장(우)이 포즈를 취했다. 흥암서원 진수당(進修堂), 진수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를 개최하거나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흥암서원(興巖書院), 충청인으로 김장생의 문하이며 노론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 한 사람을 배향한 것은 지방유림의 공의였다하나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연유를 살펴보건대 당파를 떠나 동인인 정경세가 서인인 김장생과는 친분이 있었는데 그를 만나러 왔을때 막내딸 신랑감 추천을 부탁하였다. 김장생은 제자인 송시열, 이유태, 송준길을 소개하였고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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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儒生)의 하루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0. 18. 16:46
백제문화원(사)이 주관하는 "유생의 하루"에 희망을 주는 새벽놀. 해설은 역시 허심당(虛心堂) 세계문화유산으로 승격된 돈암서원(遯岩書院) -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배향했다. 장엄한 응도당(凝道堂)의 위용. 보물 제1569호. 처음 맞딱뜨린 장판각 소쇄작업 장면 숭례사 담장의 전서 瑞日和風(서일화풍, 좋은 날씨 부드러운 바람처럼 남을 대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 지식은 넓게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地負海涵(지부해함, 땅이 실어주듯 바다가 받아주듯 모든 것을 포용하라)에 비쳐진 사계 김장생의 사상철학. 의성김예산(義城金禮山)이 8세때 썼다는 정회당(靜會堂, 낙관에 義城金禮山九歲敬書)과 9세때 썼다는 전주 한벽당(寒碧堂, 낙관에 義城金禮山九歲謹書) 현액. 한벽당 사진은 빌려옴. 부안 개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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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무성서원(武城書院)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 19. 14:10
정읍 무성서원은 정읍 칠보면 무성리에 위치한다. 사적 제166호, 세계문화유산이다. 최치원(崔致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생존인물을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을 짓고 태산사(泰山祠)로 시작하였다. 1483년(성종 14)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1549년(명종 4) 신잠(申潛)의 생사당을 짓고 태산사에 배향하였다, 1630년(인조 8) 정극인, 안세림(安世琳), 정언충(鄭彦忠), 김약묵(金若默)을, 1675년(숙종 1)에 김관(金灌)을 추가 배향하였다.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에 무성(武城)이라고 사액(賜額)되었으며 1992년에 정읍군수 김성연이 이를 기려 건립하였다. 서원의 명칭은 대부분 배향된 인물의 호를 따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