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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에 찾은 논산 관촉사(灌燭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5. 12. 7. 18:04

     

    대광명전(大光明殿) 문짝에 새겨진 귀면상은 벽사의 상징이다.

     

    인도 아잔타 석굴사원의 키르티무카 -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는 벽사의 화신

    정면의 얼굴에 실에 꿴 진주다발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는 상으로 우리나라 사찰 귀면상의 원류이기도 하다.

     

    대광명전(大光明殿) 문짝에 새겨진 연꽃 문양.

     

    대광명전에 모셔진 삼존불.

     

    대광명전.

    관촉사는 과거제도를 들여온 고려 광종(968년) 때의 스님인 혜명이 창건할 당시,

    석조미륵상이 발하는 촛불같은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智眼)스님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灌燭寺)라 하였다.

    대광명전(大光明殿), 대광보전(大光寶殿),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모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절이다.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는 윤장대. 팔각형으로 책궤인데 에는 바퀴 달고 중앙에는 기둥 세워 돌게 하여 불경 쉽게 찾아볼 있도록 만든 성물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拜禮石).

     

    보물 제232호인 석등. 관촉사 앞뜰의 큰 석불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개성 현화사석등(玄化寺石燈)의 보주와 비슷하다. https://ktk84378837.tistory.com/10149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 문화재청

     

    석등 너머로 보이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따뜻한 눈매.

     

    보물 218호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17.8m 높이를 자랑한다. 예전엔 은진미륵이라 하였는데 은진의 반약산에 큰돌이 솟는 것을 나물 캐던 여인이 발견하여 나라에 바쳤다는 유래가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조성된 가장 큰 석조불상으로, 고려시대 10세기 후반의 충청도 지방에서 조성된 석조불상의 모델이 되었다. 보물 제218호에서 2018년 4월 국보 제323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석가에 이어 미래에 출현하는 부처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미륵신앙이 현세를 구원하는 희망의 신앙으로 수용되어 폭넓게 유행하고 있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968년경 승려 조각장 혜명(慧明)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불이다.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고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 인정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석불과 관련된 기록은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용화회소(龍華會䟽)」를 비롯해『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이 참여하여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보살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와 균제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 등은 한국 불상 중 가장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미의식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아한 이상미(理想美)를 축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창성과 완전성 측면에서도 뛰어나 국보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국보323호로 승격된 은진미륵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국보 됐다 | 연합뉴스 (yna.co.kr)

    충남문화재자료 79호인 석문. 앞면 기둥에 관촉사 해탈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절내에 들어서려면 이 석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문은 네모난 돌기둥을 양쪽에 세운 후, 양 기둥 뒤쪽으로 길쭉한 돌을 5개씩 쌓아 옆면을 이루게 하였다. 기둥 위로는 네모지고 넓적한 돌을 얹어 놓아 전체적으로 4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관촉사가 건립된 후 참배객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4곳에 이러한 문을 두었는데, 그중 동쪽에 세운 이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석문을 세운 시기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관촉사가 건립되었던 고려시대로 짐작된다. - 문화재청

     

    관촉사 전경.

     

    이승만박사추모비. 논산 포로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을 석방시켜준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1965년에 세웠다.

    관촉사 http://ktk84378837.tistory.com/1594 http://ktk84378837.tistory.com/7086 대조사 http://ktk84378837.tistory.com/58

     

     

    윤장대 / 김성신

     

     

    삼월 삼짇날은 윤장대를 돌리는 날

    풍경소리 곱발 세우고

    산자락은 그늘을 등지고 좌정한다

    108배 올리던 법당에서

    굽은 허리와 무릎뼈 석탑처럼 일으켜 세우고

    윤장대 돌리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묵은 발원이 한 각씩 깊어진다

    상현달 달무리 지는 밤

    아이의 울음소리 희미하게 살아나고

    안간힘을 토해내던 흑백의 한 생

    몸속 경()이 된 통증을

    한 올 한 올 부풀리니

    저만큼 솔바람에 가슴 쓸리기도 해

    앞뒤 없는 회한과 갈망은

    두 손 맞잡고

    배웅하듯

    한 곳을 바라보니

    이마 위로 맺힌 땀방울

    눈물의 동의인 양 하염없이 흐른다

    더 두툼해질 법문의 책장에

    줄 맞추어 반듯하게 들어가 있을

    어머니의 비워낸 몸을

    나는 가만히 부축하여본다.

    --2017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관촉사灌燭寺/ 성현(1439-1504)

     

     

    길옆에 오래된 옛 사찰이 있으니 路傍有古刹(노방유고찰)

    높은 등성이에 우뚝 걸쳐 있는데 超超跨雄岡(초초과웅강) 跨;타넘을 과

    뜰 한가운데 안치한 장륙의 몸이 庭中丈六身(정중장육신) 丈六身;불상

    하늘 높이 우뚝하게 솟아올랐네 嵬峨聳圓蒼(외아용원창) 嵬;높을 외, 峨;높을 아, 聳;솟을 용

    예전에 일 만들기 좋아한 이가 있어 昔有好事者(석유호사자)

    이 백 척 높이의 불상을 만들었다네 搆此百尺長(구차백척장) 搆;이해못할 구

    항하사 같은 억만의 세계이거니 恒河億萬界(항하억만계) 恒河沙;갠지스강의 모래, 무수무량

    그 변화를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變化誰能量(변화수능량)

    지혜를 베푸는 비 이슬로 씻어주고 灌以施慧露(관이시혜로) 灌;물댈 관

    옥호의 밝은 빛으로 사방을 비춰라 燭以明毫光(촉이명호광)

    모래 사다리는 황홀경의 일이거니 沙梯事怳惚(사제사황홀)

    후인이 어찌 자세히 알 수 있으랴 後人安足詳(후인안족상)

    당시에는 누각들이 한창 건립되어 當時樓全盛(당시누전성)

    단청이 매우 휘황찬란했었는데 金碧多輝煌(금벽다휘황)

    지금은 모두 매몰되어 없어지고 至今就埋沒(지금취매몰)

    오직 담경당만 남아 있을 뿐이네 惟有談經堂(유유담경당)

    스님이 유람하는 길손을 맞이해 居僧迓遊客(거승아유객) 迓;마중할 아

    한번 웃고 죽방을 열어 보이니 一笑開竹房(일소개죽방) 竹房;승방

    처량도 하여라 돌 안석 위에는 凄涼石案上(처량석안상)

    누가 전단향을 피워 놓았는지 誰爇栴檀香(수설전단향) 爇;불사를 설, 栴;단향목 전, 檀;박달나무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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