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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귀무덤-일본백제문화답사5문화 culture/해외 foreign travel 2014. 1. 22. 15:33
청수사를 들어서면 주홍색 인왕문이 햇빛에 반사되어 화려하기 그지없는데 일본의 느낌이 아니다.
인왕문 뒤의 서문에서 만난 기모노차림의 단정한 일본여성에게 '모데루'를 부탁했다.
우리 아이들의 일부도 일행 다른 인솔교사가 주었다는 미션(기모노차림의 여성과 사진찍기) 을 수행중이다.
깍아지른 절벽에 못을 사용하지 않고 172개의 기둥 위에 절을 세운 청수사 본전.
백제인이 지었다는 설 말고도 목탑의 기술이 백제 것이라 한다.
일본 고전문학의 으뜸으로 꼽히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마쿠라노소우시(枕草子)에 자주 등장하는 아름다운 절이다.
교토 청수사 / 김윤자
천년의 세월을
수도로 지켜온 자존의 터에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역사의 불꽃이
해질녘 산 아래 피어 있음에
화사한 해탈이다.
태워서 버리는 번뇌라면
가벼운 재로 올리라고
연륜에 농익은
본당의 검은 지붕은 저리 넓은가
접어서 버리는 번뇌라면
굵은 심지로 끼우라고
일백 칠십 이개 목조다리 절벽을 메운
본당의 높은 옆구리는 저리 튼튼한가
불심에 타는 연꽃등 꽃길을 걸으며
불심에 녹아 낮은 곳으로 귀향하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나는 한 모금의 물에 족하여
낯선 땅, 낯선 절에서
적멸보궁에 잦아든다.청수사 본전에서 내려다본 오토와산(音羽山)에서 흘러내리는 오노타키약수는 이 절의 이름인 기요미즈[淸水]의 기원이다.
KT 상상원정대를 여기서 만났다.
청수사 앞을 지나 호젓한 뒤꼍으로 돌아가면 청수사 목탑이 3층인데도 불구하고 시원스레 우뚝한 모습이 찬란한 주홍빛 색깔과 어울린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조그맣고 귀여운 석불이 여럿 보인다.
여기 스님일까 푸른 눈의 키다리 스님이 추위에 떨며 아무리 중얼거려도 시주 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밖으로 나오니 상가건물 위에는 우산이 아래에는 강호동 닮은 가면이 으르렁거리며 겁을 준다.
청수사(淸水寺)에서 / 김남복
옛 수도 교또(京都),
정토종의 청수사(淸水寺)에서 물을 마신다
하나를 셋으로 나누어 완성으로 만드는 혼란스러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세 줄기
가운데 줄기를 마신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의 한을
제국주의 그늘 아래 지배의 설움을
반성을 모르는 역사의 왜곡을
준비한 작은 박을 꺼내서
세 번으로 나누어 마신다
이제는 불필요한 논쟁을 버리거라
정녕 정토라면 욕심을 버리거라
물과 같이 화합을 할지어다
잠시나마 발아래를 접수한다
비 그치고 해가 나오니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삼족오(三足烏)
교또 시내와 말 없는 비석들을 지켜만 본다
*청수사(淸水寺)-교또(京都)에 있는 사찰
*정토종-현실에서 내세를 추구하는 종파로 정토의 중심은 물
*삼족오(三足烏): 민속, 해 속에 있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
-목포詩문학동인지20집임진란의 원흉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라는 이름은 조선인을 죽이는데 빼어난 재주를 가졌다(秀吉)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하사한 이름이다.
일본 중세 3대 영웅에 관한 하이쿠에 전해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가이드는 침이 마르게 전한다.
누군가 두견새를 보내왔는데 울지 않는다면?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政敵) 목을 치라고 하는 이는 오다 노부나가요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라고 하는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요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이곳은 일명 귀무덤. 두산동아백과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전공(戰功)의 표식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머리를 베는 대신에
조선 군민(軍民)의 코와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가지고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하였다.
이때 가장 많이 조선군을 죽인자의 등급을 수(秀), 그 다음을 우(優), 다음이 양(良), 다음이 가(可)였다는 것이다.
당시 왜군의 전공품으로 희생된 조선 군민의 수는 12만 6000여 명이니 히데요시가 얼마나 혹독하고 무자비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
무덤 위 오륜석탑(五輪石塔)은 무덤이 축조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혼을 누르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말은 귀무덤이지만 실제는 코무덤[鼻塚]이었다.
코무덤이라 불리다가 지나치게 야만적이라 하여 귀무덤으로 부르게 되었다.
교토시는 이곳을 이총공원(耳塚公園)이라 이름 지었으나 이총과 비총을 병기하고 있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일본과의 악연과 원혼을 무명인의 꽃다발 하나로 달랠 수 있을까.
그 300년 뒤 일제강점기를 겪고 오늘날 아베총리는 또다시 군국주의로 내닫는 돌충행동을 서슴지 않는 작금의 작태를 어찌 해야 할까.
귀무덤에 얽힌 비참하고 억울한 역사 이야기를 해달라고 초청한 교토국제학원 하동길 교장의 침 튀기는 열변.
하교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재일동포문제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http://www.mindan.org/kr/front/newsDetail.php?category=3&newsid=6184
갈등이야 상존하지만 그래도 전쟁 없는 이 시대에 태어나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더냐.
교토의 귀 무덤에서 / 오세영
내 어릴 적
집에서 공연히 앙탈을 부리면
어머니께선 “순사가 온다” “에비가 온다”
고 말씀하셔서
그때마다 정체모를 공포에 울음을 뚝
그치곤 했나니
그 무서운 에비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일본국日本國 교토시京都市 히기시마야구東山區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 앞
미미즈카耳塚,
500여 년 전 동해 한쪽에
무단히 이웃나라를 침략한 섬나라 하나가 있어
양민 12만 6천 명을 학살하고 그 코를 베어
합사合舍한 곳.
내 평생 이 세상천지를 주유周遊하며 사는 동안
그 어디에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듣도 보도 못했도다.
자고로 한국은 수천 년에 걸쳐
그들에게 문자를 전수하고, 학문을 가르치고
의식주 생활의 지혜를 깨우치게 해
오늘의 일본을 만들어 주었건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무색하게
제자가 스승을
능욕, 강탈, 살해하였구나.
한국의 옛 속담에
털 없는 짐승은 키우지 말라하고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이라 했거니
이제 부터는 항상 눈을 크게
치켜뜨고
이 섬나라를 지켜볼 일이다.
ㅡ『시와 경계』(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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