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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 이 여자가 왜 이래?기타 etcetera 2008. 1. 6. 18:44
부강 일심이발관.
건전 이발소 / 구광렬
머리를 깎는 동안 이발사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딸이 농협에 취직했다, 휘발유보다 경유가
더 비싸지겠다, 보일러가 터졌다 하지만 이야기의
반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벽에 걸린 그림 때문이었다
어미개와 강아지 열 마리를 그리고 있는, 한 화가를
그린 그림 이었다 그중 한 마리가 캔버스 밖으로
발을 내밀어, 그림 속 화가에게 건네고 있었다 그림 속
그림의 강아지의 웃음, 그림 속 화가의 웃음, 그림 밖
내 웃음이 삐거덕거리지 않고 번져나갔다 그제야,
자신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는 걸 안 이발사, 웃었다
밖으로 나오니, 함박눈이 내렸다 건너 성당의 마리아상
속눈썹에까지 쌓일 기세였다 공원놀이터가 보이고,
빈 그네 위에 흰 눈이 쌓이고, 고요한 밤, 소시민을 위한
밤이 될 듯했다 단지, 머리카락을 잘랐을 뿐이건만
뇌수술을 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담벼락에 주차되어 있는 내 디젤 짚을 보는 순간,
20년 된 보일러가 떠오르고, 10년 째 취직 못하는
아들놈이 떠올랐다 그렇게 풍경은 그림이 되고
있었지만, 난 그림 밖에 있었다
정녕 그 그림을 그린 화가도 웃었을까 시동을 걸기도
전에, 그림 속 강아지 발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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