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룩셈부르크 Luxembourg 비앙덴 Vianden
    문화 culture/해외 foreign travel 2023. 11. 29. 15:14

    유럽의 발코니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룩셈부르크 아돌프다리(Adolphe), 1903년 아돌프 대공 통치기에 알제트 강 위에 건축된 42m 높이의 2층 아치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므로 뉴브리지(New Bridge)라고도 한다. 아돌프는 기용3세에 이어 룩셈부르크대공국의 대공이 된다. 대공이란 왕가의 황태자나 여왕의 부군(夫君)을 이르거나, 소국(小國)의 군주를 이른다. 

    은행박물관(Bank Museum in Luxembourg city). 룩셈부르크는 제주도 면적의 1.4배, 인구 63만 명의 소국이다. 1970년대 이후 금융, 물류, IT 산업의 중심 국가로 발돋움했다. 덕분에 지금은 1인당 GDP 11만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수도는 뤽상부르.

     

    아돌프 다리 / 김윤자

     

    절벽을 이고 선 다리

    이방인이 이곳에 와서 잠시 볼 때는

    휘어진 곡선 그 눈부심에, 예술이라고

    낭만을 노래하지만

    역사 저 너머 시간을 회상하는 자국민에게는

    나라의 목숨이 걸린 소슬한 현장이다.

    유럽의 강한 태풍이 쓸고 다닐 때

    얽히고설킨 줄다리기 사이에서

    작은 영토, 건너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죄 없이 짓밟혀온 나라

    그들에게 계곡은 생존의 한계선이고

    성을 쌓아 올려

    나라 전체를 둘러 진치고 살았으니

    성이 얼마나 많았으면

    룩셈부르크, 그 국명이 작은 성일까

    그 한 계곡 페트루세, 아르젯트 강 위에 솟은

    영욕의 저 다리

    큰 보호막 곁에서 평화로이 자라는 나뭇가지에

    물오른 희망이 움트고 있다.

     

    전몰자위령탑 Monument of Remembrance, 윗 부분 골든레디(Golden Lady)

    전몰자위령탑, 아랫부분, 양 세계대전과 한국전 참전 전몰자위령탑. 한국동란시 룰셈부르크 병력의 10%를 파견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상

    성모 마리아

    룩셈부르크 노틀담대성당(Cathédrale Notre Dame). Cathedral은 주교좌급, Notre Dame은 (귀부인) 혹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대리석 마리아상이 자주 세척하는지 깨끗하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첨탑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시내 어디서나 존재감이 뚜렷하다. 성당의 크기는 다른 유럽 국가의 대성당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그 위엄과 성스러움은 다른 성당 못지않다. 성당 내부의 정면과 좌우에는 르네상스 영향을 받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빼곡하게 장식돼 있는데, 부드러운 선에 맑고 고운 채색으로 마음이 온화해진다. 국가적 행사나 대공가의 결혼식이 행해지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2012년에는 잔 대공과 벨기에의 조세핀 샬럿 공주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거행됐다. 

     

     

    카디시기념비(Kadish monument), 룩셈부르크 쇼아(Shoah=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립 기념물, 9개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출신 프랑스 조각가이며. 7년 동안 기억상실증을 앓다가 장학금을 받아 미술 학교에 갔다고 한다. 카디시는 예배가 끝났을 때 드리는 송영; 사망한 근친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룩셈부르크 헌법광장의 조형물

     

    룩셈부르크대공궁(Groussherzogleche Palais),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인 대공의 관저, 그랜드듀칼궁전( Palais grand-ducal),

     

    룩셈부르크 왕궁 / 김윤자

     

    골목을 따라 들어간 곳에서

    한국의 어느 빌라와 같은 건물을 만나고

    그것이 왕이 사는 집이라고

    국기가 걸려 있으면 외출 중이라는데

    오늘은 국기가 없어

    분명 왕은 지금 저 허름한 집에 거하고 있음이다.

    왕은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할 뿐

    실권은 그리 크지 않다 하여도

    작고, 검소함이 눈부시다.

    제주도의 한 배 반 크기

    인구 사십삼만 명

    지엔피 사만 달러, 이것이 룩셈부르크다.

    호화로운 울타리, 찬란한 지붕의 왕궁을

    연상했는데, 자막은 증발되고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자꾸 우산 속에 스며든다.

    작은 도심을 빼면

    부유한 흔적이 없는 나라

    대학교도 없어 프랑스로 유학 가는 나라

    그런데 속 안에는 유럽의 쇠못이 박혀 있다.

     

    기욤2세(불어 기욤, 네델란드어 빌럼, 독일어 빌헬름, 영어 윌리엄) 기마상, 당시 네델란드 왕이자 룩셈부르크 대공이었다.

    빌렘3세 기마상, 네델란드 국왕이면서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는 연합국이었다. 빌렘3세 뒤를 이은 아돌프대공때 연합국이 해체되고 룩셈부르크대공국이 되었다.

     

    룩셈부르크 헌법광장 / 김윤자

     

    평화로운 세상일 때는

    단단한 옷을 벗어도 다치지 않고

    광장의 문을 활짝 열어도

    무서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그래서 이제는 한갓 주차장이 되어버렸는가

    한적한 마당 한가운데

    황금 여신상 천사가 첨탑 위에서

    하늘과 땅을 수호하고 있어도

    아직 잠들지 못하는

    세계대전 전몰자, 그 위령탑 아래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산 자와

    산 자의 영혼을 뜨겁게 마시는 죽은 자

    두 개의 동산이

    눈물겨운 상면으로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태우는데

    철사 줄로 아름답게 형태를 동여맨

    가로수 울타리가

    모진 세월을 이긴 나이테로

    강인한 헌법의 눈망울을 싹틔우고 있다.

     

    여독에 어느 정도 적응되면서 이비스호텔 기상은 빨라졌다. 멀리 녹색 초원에 겨울나무 한 그루가 유혹을 하기에 가까이 가려 했으나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철망 울타리가 쳐 있고 도로를 건너 또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어 접근을 포기하였다.  

    멋진 경치는 늘 차창 밖으로 흘러 간다.

     

    비앙덴에 주차를 하고 나니 어여쁜 집들이 띠엄띠엄 보인다.

    룩셈부르크 비앙덴마을로 1871년 망명와서 3개월 동안 머물던 곳은 빅톨위고문학박물관이 되어 있고, 그가 찾던 식당은 빅톨 위고의 이름을 딴 Hôtel-Restaurant Victor Hugo 이다  레스토랑 앞에 빅톨위고 흉상은 로뎅 작품인데 프랑스의회가 2002년에 기증하였다. 뒤에 보이는 비앙덴 성은 11-14세기 사이에 지어졌으며 비앙덴(Vianden) 백작의 본거지가 되었다. 혹자는 이곳에서  세기의 대작인 레미제라불을 완성했다는 말도 있는데 레미제라불은 1862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확인좀 해봐야겠다..비앙덴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는 우르(ur)강이다.

     네포무크의 성 요한(Saint John of Nepomuk, 1345-프라하 1393) 동상기 다리 위에 서 있다. 그 앞에 독실한 크리스찬인 김달진 관장이 섰다, 요한은 보헤미아(체코) 여왕 벤체슬라우스4세의 고해신부였으나 고해성사의 비밀을 누설요구를 거부했다. 여왕의 명령으로 그는 프라하의 카를교에 던져져 익사했다. Nepomuk는 체코의 지명이며 그런 까닭으로 John은 다리의 수호성인, 홍수와 익사의 보호자로 간주된다. 동상의 복제품이 아래 삼위일체교회(Chapelle Saint Nicolas)에 보관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상

    마리아폰슈판하임백작부인(1337-1400)의 묘비, 비앙덴백작 하인리히2세의딸.

    tombeau du comte heinrich von oranien nassau vianden백작의 무덤

    비앙덴마을 삼위일체교회(Chapelle Saint Nicolas), 성 니콜라스(St Nicholas)교회는 13세기에 독일 로스(Roth) 기사단에 의해 교외 주민들을 위해 우르(Our) 강의 왼쪽 기슭에 세웠다. 성 니콜라스 동상이 있는 합창단 제단화는 1768년에 제작, 성 요한 네포무크의 석상은 우리 다리에서 복사된 것으로 교체되었다. 이곳에 네포무크의 성 요한(1345-프라하 1393) 동상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비앙덴마을의 개구리인형, 사춘기남성을 상징한다. 독일 그림형제의 '개구리 왕자'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아주 아리따운 공주가 숲에서 금으로 만든 공을 가지고 놀다가 샘에 떨어뜨렸다. 마침 그 샘에 있던 개구리가 공을 가져다주는 조건으로 공주의 궁에서 지내게 해 주고 공주의 침대에서 재워주길 요구했다. 하지만 공을 되찾은 공주는 개구리를 따돌리고 성으로 돌아와 버린다. 개구리는 결국 공주를 찾아온다. 개구리의 존재를 알게 된 왕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왕은 공주에게 약속의 이행을 요구한다. 식사까지 마친 개구리는 침대에 같이 눕게 해 달라 요구하자 그동안 참아왔던 혐오감과 분노가 폭발하여 개구리를 벽에 집어 던진다. (여러가지 결말이 존재한다) 벽에 부딪친 개구리는 마법이 풀려 원래의 잘생긴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고, 왕자에게 나쁜 마녀(혹은 요정이나 마법사)의 저주에 걸려 개구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공주는 그를 허락하여 둘은 잠자리에 들게 된다. 다음날 왕자의 하인인 하인리히와 함께 마차를 타고 왕자의 나라로 떠나게 된다.

    비앙덴마을 할로윈 마녀인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