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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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노성향교(魯城鄕校)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5. 28. 20:44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밖에서 몇 컷 촬영., 아래부터는 2023년 10월 촬영. 명륜당 명륜당 현판 측면에서 본 명륜당 공자 위패 송시열 위패 조선 태조7년에 창건하였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과 송조2현(宋朝二賢)과 우리나라 18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5성은 공자(孔子), 안자(顔子,顔回), 증자(曾子,曾參), 자사(子思), 맹자(孟子,孟軻)를 이른다. 송조(宋朝) 2현은 주희(朱熹, 周惇頤) 정호(程顥)를 뜻한다. 18현은 설총(薛聰650년경-740년경), 안유(安裕, 安珦, 1243 - 1306), 김굉필(金宏弼, 1454 - 1504), 조광조(趙光祖, 1482 - 1519), 이황(李滉, 1501 - 1570), 이이(李珥, 1536 - 1584), 김장생(金長生, 1548 -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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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을 모신 충곡서원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5. 20. 09:51
지난해 겨울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화양서원 http://ktk84378837.tistory.com/3060 송시열유허비 http://ktk84378837.tistory.com/1068 용강서원 http://ktk84378837.tistory.com/2538 죽림서원 http://ktk84378837.tistory.com/541 충곡서원 http://ktk84378837.tistory.com/6542 김장생의 돈암서원 http://ktk84378837.tistory.com/912 이언적의 옥산서원 http://ktk84378837.tistory.com/4415 계백의 칼 / 문효치 그가 벤 것은 적의 목이 아니다 햇빛 속에도 피가 있어 해 속의 피를 잘라내어 하늘과 땅 사이 황산벌 위에 물들이고 스러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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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진잠향교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5. 3. 12:22
향교의 홍살문 앞을 마침 유생이 지나가고 있다. 흥학루(興學樓) 명륜당 현판은 신안주희(新案朱憙) 서(書), 신안주희는 신안주씨의 시조가 된 송나라 한림원학사 출신이며 주자(1130~1200의 증손인 4세 청계공 주잠(1194~1260)이다. 몽고의 침입으로 쇠락한 송나라를 가족 및 7학사와 탈출해 영산포로 입국하고 능성(능주)에 은거하였다. 진안의 주천 신안촌(주자천변)에서 주자학을 전수하다 능성으로 돌아와 사망하고 주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주잠과 그 후손 5위를 배향한 동원사(東源祠)와 묘, 대종가에서 세운 주자묘는 화순군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주향교의 현판도 주잠의 글씨다. 명륜당은 유생의 교육 장소이고 동.서재는 숙소. 명륜당 뒤 건물은 대성전인데 안내문에 중국의 5성6현과 동방의 18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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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 숭절사 滄溪 崇節詞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4. 30. 22:42
솟을대문 오른쪽에 도유사(종중의 우두머리) 창계 이창주의 공덕비가 있다. 의를 숭상하는 상의당(尙義堂) . 숭의당 앞마당에 청재 박심문의 절의를 상징하는 듯한 붉디붉은 겹진달래. 사당. 창계(滄溪)는 유등천의 옛지명이며 이곳에 세운 숭절사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취금헌 박팽년과 사육신 처형 소식을 당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청재 박심문이 듣고 자결하였기에 그들의 충절(忠節)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세운 사당이며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침 겹진달래가 붉게 흐드러져 그들의 충정심을 상징하는듯 하다. 사육신의 거사를 밀고하여 실패로 돌아가게 한 김질의 간사함을 풍자한 박팽년의 충절시가 가장 유명하다. 굴다리에서 본 솟을대문. 1977년에 세워진 숭절사는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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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남간정사(南澗精舍)의 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4. 8. 22:56
남간정사(南澗精舍)는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을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건축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남간은 주자의 시에서 왔다는 운곡남간(雲谷南澗)의 준말이라는데 양지쪽 산골짜기 개울물 정도의 뜻이니 뒤편 고봉산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이 정사에서 우암은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강학했고 그의 사후에는 제자들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목판으로 새긴 곳이다. 정조 임금이 서인과 노론의 영수이던 우암을 존숭하여 송자라 하였고 그의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이 송자대전이다. 보수가 끝나 새 건물 같은 남간정사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소제동 방죽 옆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었던 기국정(杞菊亭)을 옮겨온 것이다. 회덕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우암 송시열(1607~1689)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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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산운마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3. 22. 17:53
의성의 영산이라 하는 착하디 착하게 생긴 금성산 아래 형조판서로 추증된 운곡의 신도비를 지나면 떠억 하니 점우당 솟을대문이 보이지만 잠겨 있으니... 죽파 이장섭이 지었다는 안채를 담너머로 기웃거릴 밖에... 담장을 이웃한 운곡당도 잠겨 있긴 마찬가지여서 담너머를 기웃거리자니 아차차 하마터면 밟힐뻔 한 대문앞 할미 앞에 엎드려도 보고 누워도 보고 광대나물 앞에 쪼그려도 보고 이리 한참을 뒹굴 저리 한참을 뒹굴 노닐다가 애꿎은 담장만 너는 왜 새것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다가 되돌아 나오는데 어? 여기는 옛것 냄새가 솔솔 나는구나. 흙담에 초가도 보이고 그러면 그렇지. 본관이 의성이면서도 여태껏 발걸음을 못하다가 산수유마을이 있다기에 덤으로 들린 이곳. 담에는 국보77호인 탑리5층석탑, 경덕왕릉, 삼한시대 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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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민속마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2. 10. 20:58
아산.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 외암마을은 북쪽의 설화산을 최고봉으로 그 남서쪽의 약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는 낮고 마을 뒤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 조건에 따라 마을의 집은 대개 남향 또는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는 서북 계절풍을 막아 주는 좋은 기후 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마을에는 원래 여러 성씨가 살고 있었는데 조선 명종 때 예안 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게 되었고, 그 후손 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차츰 예안 이씨를 동족으로 하는 동족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에 마을 이름을 '외암'으로 기록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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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명재고택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4. 12. 11. 08:48
윤증(尹拯) 1629년(인조 7)~ 1714년(숙종 40)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 유봉(酉峰). 29세 때에는 김집의 권유로 송시열(宋時烈) 문하에서 예론(禮論)을 배웠다. 1663년(현종 4)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숙종대에도 호조참의, 대사헌,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판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1680년(숙종6) 김수항(金壽恒), 민정중(閔鼎重) 등이 경연에 나오도록 청하고, 박세채(朴世采), 조지겸(趙持謙) 등이 거듭 출사를 권했으나 사양했다. 그는 송시열, 김석주(金錫胄), 김만기(金萬基), 민정중의 세도가 바뀌어야 하고, 서인과 남인의 원한이 풀어져야만 출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일로 최신(崔愼)이 스승인 송시열을 배반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