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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용성생가와 죽림정사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1. 9. 16. 22:59

    범종법고루/장안산 죽림정사/충의원통문

     

    행당(行堂) 즉 행자(行者)의 숙소

     

    대웅보전의 전면과 후면

     

    대웅보전의 창살과 벽화

     

    용성교육관과 내부에 걸린 불탱

     

    용성기념관과 백용성 동상

     

    백용성 생가

     

    백용성 생가와 죽림정사 안내도

    주소지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 252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용성이 태어난 곳이다.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의 속명은 상규(相奎), 법명은 진종(辰鍾), 용성은 법호이다. 3·1운동 당시 만해 한용운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본 불교의 침투에 맞서 전통 불교를 수호하고, 종단의 정화에 힘쓰며 한글로 불경을 번역하여 불교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는 2005년 생가를 복원하고 사당을 세워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독립운동가인 백용성조사의 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생구제와 일본 민족정신 말살정책에 맞서기 위해 불교의 대중화에 나섰다.서울 종로 봉익동에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고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을 전개 하게된다. 대각교 운동이란 내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자(自覺覺他)”는 정신을 바탕으로 그간 서민들의 삶과 동 떨어진 산중불교 중심에서 사회변화에 발 맞추어 중생과 함께하는 대중불교로 전환하고, 개항이후 일본 불교의 침투로 왜색화 되고, 천시받던 불교를 개혁.정화하여 호국불교(護國佛敎)로서의 한국불교의 전통을 되 살리자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대사와 함께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으로 옥고를 치렀다. 3.1 독립만세 운동 당시 태극기 사용을 주장하였다. 윤봉길의사를 만주에 보냈다. 용성조사 입적후 대각사를 찾은 백범 김구 선생은용성 큰 스님께서 보내주신 독립운동 자금으로 나라의 광복을 맞이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헌 윤봉길 의사를 보내 주시어 만대에 순국의 사표가 되도록 하여 주셨습니다라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조사 영전에 감사함을 표했다고 한다. 만주에 선농당, 함양 백운산에 화과원을 조성 독립자금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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