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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소대헌, 호연재 고택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8. 6. 22. 22:36

    소대헌, 호연재 고택, 송준길의 손자 송병하가 건축하고 그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이축하여 부인 호연재와 살던 집이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뒤를 잇는 호연재 김 씨(1681~1722)는 244수의 한시를 남겼다.

    예전에 송용억 가옥이라고 했고 문이 닫혀 있어 밖에서 기웃거렸던 기억이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90호 배롱꽃 만발하는 여름 어느날 강강술래 행사가 있으니...

     

    소대헌, 호연재고택 작은사랑채인 오숙재(寤宿齋). 당호인 오숙재(寤宿齋)는 송요화의 아들인 송익흠(宋益欽, 1708~1757)의 호인데 깨어 있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항상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선비정신!

     

    개망초가 무성한 소대헌, 호연재고택 안채

     

    뒤꼍의 장독대와 터줏가리. 터줏가리는 일반적으로 서너 되들이의 옹기나 질그릇 단지에 벼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원추형 모양의 짚을 틀어 엮어 씌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더러 터주단지 안에 ‘토지지신(土地之神)’이라고 쓴 위패나 지위를 꽂거나 겉에 붙여 놓기도 한다. 보통 뒤뜰 장독대 한쪽에 놓여 있다.터주는 집터를 맡고 있는 신으로 터줏대감, 텃대감, 터전, 지신이라 한다  짚가리는 짚단을 쌓아 올린 더미를 뜻한다.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장작 따위를 차곡차곡 쌓은 더미를 가리라 한다. 곡식이나 장작 따위의 더미를 세는 단위로도 쓰이는데 한 가리는 스무단이다.

     

    소대헌, 호연재고택 안채 뒤에 위치한 송씨가묘(宋氏家廟) 사당

     

    호연재 김씨의 야음(夜吟) 시비는 고택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앞에서 본 소대헌, 호연재 고택

     

    예전에 지나쳤던 금암(琴巖), 호를 금암이라 하는 송몽인이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바위가 고택 앞뜰에 있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을 돌아나서면 작은 연못과 쉼터로 마련된 사각정을 이리 뒤틀리고 저리 굽어져 늘어진 왕버들이 풍취를 더한다. 아리랑 가락같기도 한데 닐니리 가락일 수도 있겠다. 이상 동춘당공원에서.

    호연재 http://ktk84378837.tistory.com/4443 http://ktk84378837.tistory.com/8543 

    홀로서기를 택한 조선여인, 호연재 김씨 이야기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cartoon&no=350358

     

     

    醉作(취작) / 浩然齋 김씨(1681-1722)

     

     

    醉後乾坤闊(취후건곤활) 취하고나니 천지가 트이고

    開心萬事平(개심만사평) 마음을 여니 만사가 태평일세

    悄然臥席上(초연와석상)고요히 자리에 누웠노라니

    唯樂暫忘情(유락잠망정) 즐겁기만 해 잠시 정을 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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