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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에 가면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7. 8. 27. 16:04

    나주목 정문인 정수루(正綏樓), 정수란 갓끈을 가다듬고 바른 자세를 갖추라는 뜻이니 공직자로서의 품격과 자세가 드러나 있다.

    저 북은 의성김씨 우리 선조인 학봉 김성일 나주목사가 설치한 신문고 역할, 문화재자료 제86호.

    모처럼 나주에 간게 된 연유는 나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사학연금 본부에서 행하는 봉사단 창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2주만에 물에 빠진 6D 너를 다행히도 분해 청소하는데 11만3천원 주고 찾아왔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6D mark2 나 욕심 부려 5D mark4 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바디에선 그런 참사를 면했다.

    셔터를 눌러보니 수리 전보다 부드러운 맛은 사라지고 좀 둔탁한 느낌이 드는데 그만만해도 어디인가 고맙기 그지 없다.

    한편 100mm F2.8 MACRO USM 동종 렌즈는 새것이 50만원 안팎인데 배 크기와 배꼽 크기가 엇비슷한 40만원이 소용된다기에 참사를 비켜가지 못하였다.

    하여 신형이라고 해야 이미 7~8년 전에 손떨림보정 기능 달고 나와 배나 비싼 F2.8L MACRO IS USM 으로 갈아탔다. 살림 장만했다. 이런!

     

    외삼문인 망화루(望華樓).

     

    중삼문.

     

    나주목의 객사로 사용하던 금성관(錦城館). 금성산 아래 자릴 잡았다.  유형문화재 제2호,

    내삼문 터가 가로로 보인다.

    왕을 상징하는 지방궁궐이었던 만큼 규모가 대단하다, 왕건이 나주를 점령하지 못했으면 고려도 없는 것이었다.

     

    현판의 글씨는 멋들어진데 낙관이 없어서인가 낭옹(浪翁) 김현(金晛)의 서라느니 추사 김정희의 서라고도 한다.

    결국 2005년 도올 김용옥의 서라는 말까지 떠돈다. 누구의 글씨든 휘황찬란하다.

     

    금성관의 동익헌인 벽오헌(碧梧軒).  예전엔 봉황이 앉던 벽오동이 있었을까.  

     

    금성관 뒤안에 600년 풍상을 굽어본 은행나무 보호수가 명찰을 달고 있다.

     

    비석군.

     

    의열각(義烈閣), 나주지역 동학접주인 나동환이 관군과 일본군을 피해 처가인 함평 다라실로 피신하였으나 부인인 정씨가 끝내 밝히지 않고 순절했음을 기리니 위해 세운 의열비.

     

    나주목 내아인 금학헌(琴鶴軒).  琴과 鶴으로 상징되는 선비정신이 올곧게 드러나니 정수루와 마찬가지의 이름이다.

    이곳은 민박을 할 수 있는데 자연 쓸고 닦으니 자물쇠 채워 거미줄 치고 켜켜이 먼지 앉는 다른 문화재시설보다 보존에 실질적이다.

     

    벼락맞은 팽나무 등걸에 붙어 생명력의 끈질김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풍등 열매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다.

     

    갸륵한 전설을 품고 있는 벼락맞은 팽나무.

     

    내아를 빠져나오자 담장을 이웃한 내아네 카페.

     

    하늘타기가 운명인 하늘타리가 허공에 매달려 바람 그네를 타고 있다.

     

    400살 먹어 등굽은 해송 보호수. 향토문화유산 제1호인 이로당(나주노인회로 사용 중) 골목에 위치한다.

    용이 솟아 오르는 모습과 같다 하여 용소나무라 한다.

     

    돌담을 늘어뜨린 능소화가 하나 둘 저물기 시작하니 여름이 간다.

     

    퀴퀴한 계요등이 기왓장을 칭칭 감기 시작하니 가을빛이 감돈다.

     

    능소화길 끝에 나타난 것은 나주읍성 4대문 가운데 서성문(西城門)인 영금문(映錦門) 이다.

    서성문 안 석등이 보물 제364호인데 중앙박물관 야외에 있다. 제자리를 찾아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나주읍성 서성문에서는 관군이 동학농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하여 객사 비석군에 금성토평비를 세웠다.

    나주읍성 동문인 동점문이며 남문인 남고문이 복원되어 있고 북문인 북망문이 복원 중에 있으나 투어에서 빠져 있다.

    <고려사>에 수군대장 왕건이 견훤과 싸우기 위해 나주진으로 행군하던 중 완사천(浣紗泉, 지금의 송월동)에 오색구름이 어려 있었다.

    왕건이 그곳으로 달려가 빨래하고 있던 낭자에게 물을 청하니 체할까 염려되어 바가지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주었다.

    이에 감동한 왕건이 낭자와 동침하였으나 미천한 여인이므로 임신을 피하고자 체외사정을 하였으나 낭자가 옥문()으로 빨아들였다.

    낭자의 몸에서 2대왕 혜종이 태어났으며 목포 호족의 딸인 낭자 오씨는 장화왕후가 되었다.

    왕이 태어난 완사천이 있던 마을은 龍 자를 써서 흥룡동(興龍洞)으로 불렸다.

    완사천에는 장화왕후 유적비와 그들 만남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고창읍성 http://ktk84378837.tistory.com/295 나주영상테마파크 http://ktk84378837.tistory.com/2497 나주읍성 http://ktk84378837.tistory.com/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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