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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동 한옥마을과 김옥균생가지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6. 3. 17. 17:54
청렴과 진실된 마음으로 봉사하고 덕을 베푸는 삶의 태도가 묻어나는 세수청덕(世修淸德)
이 시는 1619년(광해11) 1월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군사가 청나라(후금)를 치러 나갔다가 3월에 요동의 심하(深河)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지었다고 한다.
송담우음(松潭偶吟) / 송담 송남수
石嶺春猶早 沙村雪未消
鳥投溪外樹 人斷柳邊橋
野老偏憂國 山戎久據遼
西征健兒盡 閭巷日蕭條
돌 고개에 봄이 아직 일러서 사촌에는 눈이 녹지 않았네.
새는 골짜기 너머 숲으로 들어가고 인적은 버드나무 옆의 다리에도 끊겼네.
시골 늙은이는 오직 나라를 근심하는데 오랑캐는 오래 요동에 웅거하였네.
서쪽으로 정벌 나갔던 씩씩한 청년들 모두 죽고 마을은 날마다 쓸쓸하구나.
송남수 당우인 절우당(節友堂), 송담(松潭) 송남수(宋柟壽)는 1537(중종 32)에 태어나 1626(인조 4)에 졸하였다. 호조정랑, 통천군수, 임천군수 역임하였으며, 군자감정(軍資監正) 송요년(宋遙年)의 증손이고, 조부는 송여림(宋汝霖), 부친은 안악군수 송세훈(宋世勛)이다. 1601년 임천군수 재직중 임란 때 주장(主將)을 구하지 않은 죄로 탄핵, 선조인 송유(宋愉)의 재실 쌍청당(雙淸堂)을 중수하여 송(松)국(菊)매(梅)죽(竹)을 심어 소영(嘯咏)하고, 옛 선인의 언행을 초록하여 『검신요결(檢身要訣)』을 저술하였다.
송남수묘역
송국택 재실인 사우당(四友堂)
한천각과 한천의 유래비가 처마끝에서 달랑거린다.
송희건 재실인 월송재, 문화재자료31호
송국보 재실
이사동 묘역은 은진 송씨 송요년의 묘가 자리하면서 시작되었다. 510여 년간 장묘와 제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1070여 기가 분포된 집장 묘역촌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부 잠정목록에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월송재 등 재실이 14곳, 절우당 등 사우/당우 5개가 보전되고 있다. 묘역에는 석망주가 거의 조성되지 않았고,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행했던 묘 동자석도 송국보의 묘 외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대신 벽사와 자손의 번영과 길상 등을 상징하는 귀면문, 약리문, 거북문 등의 독특한 문양이 있다. 묘역에서 지내는 제례를 위한 차일석이 많다. 인근에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받은 노송이 묘역과 어우러져 있다. 이사동 묘역 중에 송요년, 송남수, 송응서 묘역은 시 기념물로, 월송재와 추원재는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김옥균생가지비와 오도산격전지비. 김옥균생가지는 200m 안쪽에 떨어져 있어 혼동된다. 김옥균(1851~1894)이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동방의 불란서가 되어야 한다며 서구 문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개화파가 되어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이에 국외로 도피했지만 홍종우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도 모자라 능지처참까지 당해 머리는 효수되고 갈가리 찢긴 몸들은 전국을 돌며 전시되었다. 생모와 누이는 음독 자결했고, 생부는 투옥 후 처형됐으며, 동생은 옥사했고 부인은 간신히 관군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다. 한마디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김옥균의 외가와 7세까지 살던 생가는 공주 정안 광정리이며 박정희대통령의 명으로 세운 유허비가 있다. 그의 머리가 묻혀 있다는 도쿄의 진정사, 그의 일본인 친구들이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 그리고 의관을 챙겨 묻었다는 아오야마(靑山) 공동묘지이다. 아산의 묘지는 양아들이 아오야마에서 의발(衣髮)을 이장해온 것이라 한다. 김옥균 시비가 보령 개화예술공원 내에 있다. 참조 일본 힘으로 개화를 꿈꾸다 처참하게 죽은 '삼일천하' 주인공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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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동 한옥마을과 김옥균생가지 https://ktk84378837.tistory.com/7165
오언율시 / 김옥균
野人重農事(야인중농사) 야인이라 농사를 소중히 여기며
晨起開柴扉(신기개자비) 새벽에 일어나 사립문 열어놓았네
宿霧半峰出(숙로반봉출) 어제 밤이슬은 작봉에 내려있고
殘星雙鵲飛(잔성쌍작비) 지는 별빛에 쌍용이 나르도다.
禾麻方郁郁(화마방욱욱) 벼와 삼대 곧 무성하겠고
婦子遠依依(부자원의의) 아내와 아들 멀리서 가물거린다.
鉏動田間草(서동전간초) 밭두렁의 풀을 매노라면
阜螽跳滿衣(부종도만의) 메뚜기가 뛰어서 옷자락에 가득하네.
이사리 / 김완하
폭설, 차는 끊겼다
마을은 몇 가닥 불빛에 기댄 밤
무릎 빠진 눈 구렁에 누워
소나무숲은 깊은 잠으로 묶여갔다
중앙시장 골목,
낮부터 퍼붓기 시작한
눈발에 묻혀 섰다가
어스름 장 골목
흐린 불빛에 젖어 있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마을 개도 잠잠한 들길을
가로질러 온다
한 광주리의 폭설을 이고
마을 아낙들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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