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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춘당과 호연재 시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09. 9. 15. 11:18
툐요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동춘당을 찾았다.
여선생님의 해설이 재치가 재미롭다.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하는 말이다.
얘들아 이리 와 봐, 이 나무는 간지럼을 탄단다.
여기를 이렇게 긁어 보렴. 이파리가 움직이지?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게 아니라 간지러워서 웃는 거란다.
정말 움직이지?
그래서 이 나무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단다.
물론 배롱나무에 얽힌 이야기다.
사실 신경세포가 없는 나무가 간지럼을 탄다는 건 거짓이다.
그럼에도 산교육이다.
우리나라의 초등교육은 일면 잘 돌아가고 있다.
저렇게 성실한 교사가 있는 한.
동춘당(同春堂)은 조선 효종때 우암 송시열과 함께 서인의 핵심으로 북벌계획에 참여한 송준길의 호이다.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 풍양 조씨, 좌의정, 국립중앙박물관에 청죽도가 있음)이 쓴
동춘당기(同春堂記)에 ‘동춘당’이라는 집 이름이 사물과 함께 봄을 맞는다(與物同春)’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동춘당은 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인조반정의 공신인 김자점과 원두표, 이완을 탄핵하여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김자점이 북진정책을 청(淸)나라에 밀고하는 바람에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대사헌(大司憲)을 지낼 때 이조판서에 있던 송시열과 국정을 주도하였다.
병조판서,우참찬·좌참찬 겸 좨주(祭酒)·찬선(贊善)을 지냈다.
조선 중기 별당건물의 정형을 보여주는 동춘당은 현재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어있다.
지금 경내는 건물 이외의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라 출입이 까다롭다.
2007년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복원’ 가치가 충분해 국비지원을 약속하고
대전시가 시비를 추가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동춘당 뒤로 고택이 있다.
위는 동춘당의 종택인 의락당(宣樂堂)이다.
고택 동춘당 오른편에는 송용억 가옥이 있다.
고택과 송용억 가옥 사이에 호연재(浩然齋)의 시비가 있다.
동춘당의 손자인 송병하의 며느리인 호연재 김씨가 살던 곳이다.
시비에는 동춘당의 증손부인 호연재 김씨가 쓴 야음(夜音)이 눈길을 끈다.
좀처럼 시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내의 가슴에 와 닿는다.
동춘당 http://ktk84378837.tistory.com/408 http://ktk84378837.tistory.com/4418 http://ktk84378837.tistory.com/1907
夜吟(야음) / 김호연재 (이숙희 역)
月沈千嶂靜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泉暎數星澄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
竹葉風煙拂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梅花雨露凝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生涯三尺劍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心事一懸燈 마음은 한점 등불이어라
調帳年光暮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衰毛歲又增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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