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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landscape 2023. 1. 10. 16:59

    뿌리공원 효문화마을

     

     

    뿌리에게 / 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의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 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테니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생일 축하

     

     

    꽃바구니 / 나희덕

     

     

    ,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와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아시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이 모순에 찬 꽃들의 화음을.

    너무도 작은 오아시스에

    너무도 많은 꽃들의 허리가 꽃혀 있는

    한 바구니의 신음을.

    대지를 잃어버린 꽃들은 이제 같은 시간을 살지요.

    서로 뿌리가 다른 같은 시간을.

    향기롭게, 때로는 악취를 풍기면서

    바구니에서 떨어져 내리는 꽃들이 있네요.

    물에 젖은 오아시스를 거절하고

    고여히 시들어가는 꽃들.

    그들은 망각의 달콤함을 알고 있지요.

    하지만 꽃바구니에는 생기로운 꽃들이 더 많아요.

    하루가 한 생애인 듯 이 꽃들 속에 숨어

    나도 잠시 피어나고 싶군요.

    수줍게 꽃잎을 열듯 다시 웃어 보고도 싶군요.

    ,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아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사이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이 불가능한 동거의 침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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