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사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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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남간정사(南澗精舍)의 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4. 8. 22:56
남간정사(南澗精舍)는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을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건축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남간은 주자의 시에서 왔다는 운곡남간(雲谷南澗)의 준말이라는데 양지쪽 산골짜기 개울물 정도의 뜻이니 뒤편 고봉산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이 정사에서 우암은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강학했고 그의 사후에는 제자들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목판으로 새긴 곳이다. 정조 임금이 서인과 노론의 영수이던 우암을 존숭하여 송자라 하였고 그의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이 송자대전이다. 보수가 끝나 새 건물 같은 남간정사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소제동 방죽 옆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었던 기국정(杞菊亭)을 옮겨온 것이다. 회덕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우암 송시열(1607~1689)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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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남간정사(南澗精舍)의 겨울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2. 12. 8. 21:06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남간정사는 유형문화재4호. 별당건물인 기국정(杞菊亭)은 주위에 구기자와 국화가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산사나무와 직박구리. 우암사적공원의 덕을 널리 베푼다는 뜻의 덕포루(德怖樓). 석파정 https://ktk84378837.tistory.com/4956 월류정 http://ktk84378837.tistory.com/1707 http://ktk84378837.tistory.com/4344 송시열의 남간정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417 http://ktk84378837.tistory.com/407 송시열유허비 http://ktk84378837.tistory.com/1068 赴京(벼슬하여 한양에 나아감) / 宋時烈 錄水喧如努 녹수훤여노 녹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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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월류정 月留亭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2. 11. 5. 14:39
충북 영동군이 자랑하는 한천팔경 가운데 달(月)이 머물다(留) 간다는 절경이 407m 월류봉이요 그 아래 봉우리에 월류정을 지었다. 달밤의 정경을 봐야 제격일 터. 한천팔경의 으뜸이다. 월류정을 따라 내려오다 보이는 정자가 있다. 우암 송시열이 머문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시열유허비각이 감나무 사이로 보인다. 그를 배향한 한천서원이 철폐된 후 지은 한천정사(寒泉精舍) 누각이 있다. 담양 소쇄원에도 같은 이름의 정자가 있다. 한천정사는 본래 주희 (朱熹) 즉 주자가 모친상을 치른 뒤에 시묘살이 하던 묘소 옆에 정자 회암(晦庵)을 짓고 학자들과 강학하며 저술에 힘쓰던 곳이라고 한다. 송 건도(宋 乾道) 2년 주희 41세(1165년) 때이다. 주희의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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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기념관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1. 12. 14. 19:54
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기는 시대와 동서를 막론하는구나. 대전 동구 가양동 65 우암사적공원 내 송시열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시열 초상-작가 미상이지만 국보239호. 남간정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417 http://ktk84378837.tistory.com/407 송시열유허비 http://ktk84378837.tistory.com/1068 월류정 http://ktk84378837.tistory.com/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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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송시열유허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0. 9. 20. 20:02
유허비의 전면과 후면 우암 송시열이 태어나고부터 26세까지 보낸 이원면 구룡리 외가에 정조2년 1778년 세워진 유허비. 노론의 영수로 효종의 북벌정책을 추진하였으며 현종때 좌의정에 올랐다. 숙종 때 세자책봉에 반대하다 제주로 귀양을 갔다가 신문을 받기 위해 돌아오다 남인의 책동으로 정읍에서 암살당했다. 송시열유허비 옆에 충신 곽자방의 비각이 있다. 곽자방은 임란 때 의병장 조헌 휘하에서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으나 금산전투에서 희생되었다. 우암 송시열유허비와 한자리에 있는 곽자방은 외가인 선산곽씨 인물이다. 우암 송시열의 부친인 睡翁 송갑조가 살던 집터에 세워진 유기비. 우암 송시열은 아버지 집인 이곳에서 태어나 유허비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여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사유재산 이용에 장애가 많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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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서원(華陽書院)과 운영담(雲影潭)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08. 6. 11. 15:18
화양서원(華陽書院). 우암 선생사후 7년 뒤인 1696년(숙종 22) 권상하, 정호 등이 청천면 도원리 침류정 아래 만경대에 건립하였다. 창건되던 해 바로 사액되고, 1716년에는 어필로 편액을 달았다. 1704년 만동묘 건립후 왕래불편과 서원수호의 이유로 1709년 겨울 만동묘 옆으로 이전하였다. 조선후기 노론사림의 본거지이자 중앙정치의 중심이었으며, 18세기 정치 및 학문의 중심이었다. 후에 '華陽墨牌'의 폐단등으로 1858년(철종 9)에 복주촌이 폐쇄되고, 1871.03.16(고종 8)모든 건물이 헐리고 묘정비는 땅에 묻히게 되었다. 2002~2004년까지 남아있는 초석 위에 송자사, 숭삼문을 복원하였다. 화양동에 은거하기 시작한 우암 송시열이 지은 화양서원과 그 맞은 편의 암서재(巖棲齋)는 당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