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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퐁냐깨방국립공원, 후에(hue)
    문화 culture/해외 foreign travel 2019. 3. 13. 00:10

    동허이해변 숙소를 떠나 후에로 달리는 길가 식당에서 이 지역 특산인 쿠도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네 콩강정과 비슷하여 구진할 때 군것질하기가 딱 좋다.

    어미의 분주함을 도와줄 법도 한데 스티브 잡스가 남기고 간 혁명적 문명을 넋을 놓은채 즐기는 아들은 아랑곳 없다.

     

    목적지인 퐁냐깨방국립공원엘 가는 길목에 베트남독립의 2인자인 무원갑(Võ Nguyên Giáp)의 묘소를 참배하려 했다.

    ㅉㅉ 입구에서 촬영금지와 함께 카메라지참을 통제하는지라 입장하지 않고 돌아나온다.  

     

    동허이(Đồng Hới, 洞海) 해변호텔에서 잠만 자고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이자 동아시아 7대공원이라는 퐁냐깨방국립공원(Phong Nha-Ke Bang National Park)으로 달려 갔다. 눈이 놀라고 가슴이 뛸만한 신비한 매력을 지닌 거대한 텬드엉(天峒)동굴만 보고 나오자니 좀 억울했다. 이 공원에는 세계 최대 자연동굴인 손둥동굴 베트남 선둥동굴, 세계 최대·최고 자연동굴 - 인사이드비나 (insidevina.com)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후에(hue, 化)로 내달려오니 관문의 밤빛깔은 화려하고 저녁으로 선택한 이곳의 자랑거리 민물상어요리는 착착 감긴다.

    후에는 대부분 회라고 줄여 발음한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Than Hoa) 로 부르다가 응우옌 왕조(1802~1945) 이후 후에라 하였다.  

     

    구도심인 황궁으로 들어거는 서남문(西南門) 앞쪽 길가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길건너 건널목에 열차가 지나간다.

     

    서남문(西南門)이다.

     

    후에(hue, 化)는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수도이며 이곳에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왕궁을 지었다. 왕궁의 정문인 정오문(正午門)이다.

    예전 지명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平和, Than Hoa)였다고 한다.

     

    왕궁의 정문을 지나면 패루 너머로 태화전(太和殿)이 보인다. 첫번째 패루에는 정직탕평(正直蕩平), 두번째 패루네는 고명유구(高明悠久)가 선명하다.

    태화전 안은 촬영금지구역이고 뒤뜰은 품계석이 서 있는 근정전이다.

     

    묘문(mieu mon 廟門)

     

    은우엔왕조를 건국한 지아릉황제를 위해 2대 민왕이 제작했다는 거대솥은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세조묘에는 10명 왕의 신위가 봉안된 뗴미우(지아룽황제의 시호인 떼또로도 부른다)

     

    왕의 거주지인 흐엉 딴(Hoang Thanh)은 커다란 궁전이란 의미로 다이 노이(Dai Noi)라고 부른다.

    왕궁의 미니어처를 보면 중국의 자금성을 본딴 대륙풍의 궁궐이다. 흐엉 강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면적은 5.2km2이며,

    프랑스 건축가인 바우 반(Vauban)의 설계에 따라 프랑스식과 베트남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

     불행히도 태화전 뒤쪽의 부속건물들은 월남전쟁때 소실되었다.

     

    숭공문(崇功門)과 법고

     

    왕궁 탐방을 끝내고 나오는 후문(後門)

     

    퇴색해가는 성벽

     

    자체 제작해서 달아놓은 연등

     

    왕궁을 마주한 베트남 국기게양대를 벗어나 응우엔왕조의 4대 황제인 뜨득(Tu Duc, 嗣德) 묘를 찾아간다.

    보수적 쇄국주의자이며 왕조역사상 가장 봉건적인 왕으로 기억된다.

    가장 긴 35년의 통치기간, 50명의 요리사가 만든 50가지 요리를 50명의 하인이 시중을 들었다. 후궁이 100명인데 자식이 없다.

    가톨릭을 탄압하고 왕릉 조성에 3천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비밀 유지를 위해 이들은 모두 참살당했다. 등등

     

    입문

     

    정원

     

    왕을 호위하는 무신상과 문신상

     

    뜨득황제릉 조성에 소요된 3천명의 인부는 왕릉의 비밀 유지를 위해 참살당했고 이곳에 뜨득황제의 시신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되돌아나와 다시보는 정문

     

    유리병 조각이 꽂힌 높다란 담장 

     

    1601년에 세워진 티엔무(天姥寺)사원의 팔각칠층 복연탑(福緣塔)으로 높이 21m이다.

    姥는 외할머니 모 자인데 티에우치황제가 할머니의 팔순 기념으로 세웠다는 유래가 있다.

     

    딴호아(Than Hoa)라 부르던 후에를 떠나 다낭 시내에 숙소를 정해놓고 니케해변에서 해물로 식사를 하고 낮에 보아두었던 다낭 한강(Hàn River)의 명물 용교(龍橋)를 찾았다. 상류는 다낭해협이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발음이 같아 더욱 친근감이 든다.

    가오룽(Cau Rong)이라 부르는 용교는 주말과 행사시에 불을 뿜어내는 이벤트를 한다는데 평일이라 못내 아쉽다. 너무 바쁘고 힘이 드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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