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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천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8. 6. 16. 23:01

    영천 은해사(銀海寺) 거조암(居祖庵)의 영산루

     

    거조암 맞은 편의 요사채.

     

    조사(祖師)가 머물던 거조암(居祖庵)은 꽃대궐이다.

    거조사(居祖寺)를 먼저 지었는데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거조암 쪽에서 잡은 영산전

    영산전(靈山殿)이라 함은 석가모니와 팔상탱화(八相幀畫: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시기로 나누어 그린 탱화)를 봉안한 사찰의 중요 당우 중 하나이다.

    팔상전(捌相殿)이라고도 하며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축산()을 줄인 말이다.

    불상의 후불탱화()로는 영축산에서의 『법화경』 설법상을 묘사하고 영산회상도()를 봉안한다.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靈山殿)은 고려말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 및 수덕사 대웅전 느낌을 주는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는다. 국보 제14호.

    삼층석탑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04호.

    은해사는 해안평()에 해안사()라는 이름으로 신라 헌덕왕 때 혜철국사가 창건하였으나 조선 인종 때 소실되고 명종 때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처마장식을 통해 고려말 건축의 특징과 중수하면서 조선초기의 특징을 함께 보여 준다고...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靈山殿) 외부 모습.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거조암 영산전 526 체의 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10대 제자와 16 나한 그리고 500 성중의 집합이다. 

    영산전 안의 본존불은 촬영금지 안내되어 있어 밖에서 망원으로 잡았으며 나한상은 https://blog.naver.com/mieein/221021907961에서 가져왔다.

     

    정면전경은 영산루에서 담아야 되는데 역시 출입금지 되어 있어 양쪽이 잘렸다.

     

    은해사 거조암의 산신각(山神閣)

     

     

    은해사 거조암 전경.

    은해사 홈페이지에 보면 은해사 역대고승으로 원효성사, 일연국사, 설총대사를 꼽고 있다. 원효는 서기 617년 압량군 불지촌(현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지역)에서 담날(談捺)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효의 속가 성은 설씨이다. 설씨는 신라의 6두품에 해당하는 신분계급이었다.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으며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은 사라수라는 밤나무 아래서 태어났다. 석가모니와 같은 출신배경이며 아명은 첫새벽의 뜻을 가진 서당(誓幢)이다.

    설총대사는 원효가 아버지였고 요석공주가 어머니이다. 태종무열왕대인 654 ~ 660년 사이에 태어났다. 신라십현의 한사람으로 경주설씨의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삼문장(新羅三文章)으로 꼽혔다. 설총은 향찰을 집대성, 정리하였으며 화왕계(花王戒)를 지었다. 고려 현종 때 홍유후(弘儒侯)의 시호를 추증받았다. 문묘에 최치원과 함께 종향(從享)되었고,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되었다.

    일연국사는 밝은 해를 보고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현명이라 하였다.  13세에 출가하여 일연이라는 법명을 얻고 고종 13년(1227년) 승과에 장원급제한다. 고종46년(1259년)에는 '대선사'란 칭호를 받고,  72세가 되던 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읽은후 영향을 받아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다.

     

    차를 타고 들어오느라 지나친 일주문을 나가기 전에 멀찍이서 개망초 위로 본다.

    초여름 햇살이 따갑고 눈이 부시다.

    인각사 https://ktk84378837.tistory.com/8538 은해사 http://ktk84378837.tistory.com/8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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