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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8. 7. 13. 18:07

    고선사터삼층석탑, 국보 제38호, 경주 국립박물관 내,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석탑과 비슷하다.

     

    외동읍 말방리에 있던 숭복사터(崇福寺址) 쌍거북비석받침(雙龜趺). 원성왕의 명복을 빌어주던 사찰로 최치원이 지은 비문이 있었다.

    경주 배리 창림사터와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터에도 쌍거북받침이 있는데 모두 왕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봉덕사종,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렀다. 국보 제29호, 경주국립박물관 내.

    성덕대왕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봉덕사에 있다가 폐허로 변하자 영묘사, 경주읍성 남문밖, 동부동 구 경주박물관에에서 지금의 자리로 옴겼다.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동(銅) 12만 근으로 주조를 시작했으나 완성을 못하고 죽자 아들인 혜공왕이 뜻을 받들어 771년에 완성했다

    오대산 상원사 동종(725)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동종을 대표하며 8세기경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를 공양했다는 애달픈 전설을 바탕으로 에밀레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성덕대왕 신종은 무게 약20톤에 소리 86점으로 최고의 예술성을 자랑하지만 

    중국 북경 각생사(覺生寺, 지금의 대종사)의 영락대종은 무게 46톤으로 세계최대이나 500년 역사에 소리는 40점에 불과하다. 

     

    국립경주박물관.

     

     

    비 오는 날 골라서 가는 걸까 가기만 하면 비가 오는 걸까. 왜구의 노략질에 강박관념이 있어 부스럭 소리에도 놀라는 걸까.

     

    감은사지 입구 수로에서 볼 수 있는 석잠풀

     

    술패랭이. 감은사지 올라가는 비탈에 빗물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여 있다.

     

    감은사(感恩寺)는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해 682년(신문왕 2) 완성하였다. 

    금당의 기단 아래에 동향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유서에 따라 골(骨)을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사적 제31호이며 동서 삼층석탑은 국보 제112호이다.

     

     

    경주역사(慶州驛舍)

     

    분황사 맞은편 백일홍밭에 서 있는 구황동 분황사지 석당간

     

    분황사 모전석탑(芬皇寺 模塼石塔), 안산암석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신라 유일의 모전석탑이다.

    634년(선덕여왕 3) 분황사의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었다. 국보 제30호. 9층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3층 930cm

     

     

    종소리 - 오장환(19181951)

     

     

    울렸으면……종소리

    그것이 기쁨을 전하는

    아니, 항거하는 몸짓일지라도

    힘차게 울렸으면……종소리

     

    크나큰 종면(鍾面)은 바다와 같은데

    상기도 여기에 새겨진 하늘 시악시

    온몸이 업화(業火)에 싸여 몸부림치는 거 같은데

    울리는가, 울리는가.

    태고서부터 나려오는 여운--

     

    울렸으면……종소리

    젊으디 젊은 꿈들이

    이처럼 외치는 마음이

    울면은 종소리 같으련마는……

     

    스스로 죄 있는 사람과 같이

    무엇에 내닫지 않는가,

    시인이여! 꿈꾸는 사람이여

    너의 젊음은, 너의 바램은 어디로 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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