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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오릉(新羅五陵)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11. 7. 22. 21:28

     

     


     

    왕릉 / 김정환(1954~ )

     



    위대한 생애가 위대하게 다하고

    울음이 끝나고 썩음의 생애가 다하고

    기억과 시간의 생애가 다하면

    생명 아닌 그 무엇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지

    저녁놀 직전 왕릉을

    우러르면 보인다.

    빛도 크기도 없다 색깔도 없다

    깊음도 없다 모양도 없다

    동그라미는 수천 년이 애매하다. 왕릉의 동그라미는

    가라앉으며 솟아오르므로 제자리다.

    가라앉음이 솟음이므로 제자리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생애 너머로 흔들린다. 저녁놀 직전 우러르면

    왕릉은 빛 없는 빛이다. 크기 없는 크기다.
    냄새, 남은 냄새의

    냄새 없는 냄새 코끝에 물씬하다.


    어렸을 때의 왕릉은 소풍 가는 곳. 김밥과 콜라와 오후의 보물찾기가 있던 곳. 젊었을 때의 왕릉은 한나절 데이트 코스. 뻗어 내린 능의 곡선을 보며, ‘오우, 섹시한데?’ 그녀와 능을 교대로 힐끔대곤 했지. 나이 들어 찾아간 왕릉은 무슨무슨 가든 옆에 있는 그냥 언덕. 갈비 굽는 연기에 가려 누구 능인지 거들떠보지 않았네. 왕릉은 위대한 인물이 죽고, 그를 기리는 울음이 그치고, 그의 육신이 썩고, 그에 대한 “기억과 시간”이 다 끝나고 나서도 거기에 있는 곳. 애매한 동그라미. 늘 제자리. 빛도 크기도 색깔도 깊음도 모양도 없는 삶. 오늘도 가장들, 아랫배에 왕릉 하나씩 품고 가든에서 웃고 떠든다. 그러다 문득 쓸쓸해진다. 옷에 밴 고기냄새처럼. <권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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