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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Gossypium hirsutum초목류 wild flower/아욱과 Malvaceae 2012. 8. 21. 20:26
목화[木花] cotton. 면화(綿花), 학명은 Gossypium hirsutum L. (구 Gossypium indicum LAM.) 아욱과 목화속의 한해살이풀로 높이 90㎝. 열대에서는 다년생 목본식물로 180∼210㎝. 아프리카 남부 인도 원산. 인도에서는 기원전 3천년부터 재배되었으며, 《고려사》에 우리나라는 1363년(공민왕 12)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씨앗을 가져와 장인인 정천익(鄭天益)이 경상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처음 재배하였다. 꽃은 7월 하순에서 8월 하순에 걸쳐 개화하며, 꽃봉오리가 맺히고 난 뒤 꽃이 피기까지는 약 30일이 소요된다. 꽃에는 5매의 꽃잎과 3매의 꽃받침, 1개의 암술 및 약 130개의 수술이 있다. 자가수정을 한 후 커진 자방을 다래라 한다. 경산 전라에서는 명다래라 하였다. 이 다래는 달콤하여 배고픈 시절 군것질로 배를 채울 수 있었고, 이것이 성숙하여 면모(솜)가 되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 3~5실로 나누어진 흰색의 솜털 같은 종실(種實)을 터뜨리는데 1실의 면모 속에 딱딱하고 검은 씨앗이 7~10개의 씨가 들어 있다. 목화를 실로 가공하는 물레는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가 발명하여 물레가 되었고, 문영(文英)이 베틀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베를 짰다 하여 문영베>무명베가 되었다. 목화씨앗은 피부미백, 치질, 지혈, 기관지, 간염, 결막염에 좋다. 영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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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의 아버지 문익점(文益漸, 1329-1398)
자는 일신(日新), 삼우당(三憂堂), 충선공(忠宣公). 강성현(江城縣, 지금의 경남 산청) 출생. 문숙선(淑宣)의 아들이다.
문익점과 그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이 처음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는 문익점면화시배지(文益漸棉花始培地)가 사적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고, 여기에 삼우당선생면화시배사적비(三憂堂先生棉花始培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목화 씨앗을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이야기는 『태조실록』에 "전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문익점이 졸(卒)하였다. 익점은 진주 강성현(江城縣) 사람이다. 아버지 문숙선은 과거에 올랐으나 벼슬하지 않았다. 익점은 가업을 계승하여 글을 읽어 공민왕 경자년에 과거에 올라 김해부사록(金海府司錄)에 임명되었으며, 계묘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로써 좌정언(左正言)에 승진되었다. 계품사(計稟使)인 좌시중(左侍中)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나라 조정에 갔다가 돌아오려고 할 때에 길가의 목면(木緜)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고 전한다.
『고려사』열전 문익점전에 의하면, 정치적 격동기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은 원에 체류한 채 덕흥군 편에 붙었으나 덕흥군이 패배하자 고려로 귀국하였다. 문익점이 실제로 덕흥군을 지지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원나라에서 귀국할 때 그는 종자(從者) 김룡(金龍)을 시켜 밭을 지키던 노파가 막는 것을 무릅쓰고 목화 몇 송이를 따서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와 장인 정천익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시험 재배를 하였다. 문익점이 목화를 우리나라 기후와 토질에 맞지 않아 다 죽고 장인인 정천익이 키우던 한 그루만 살아남아 퍼지게 되었다.
조식(曺植)이 쓴 『목면화기(木棉花記)』는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와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가공하여 의복을 짓게 된 경로를 밝힌 기록이다. 문익점의 그 공을 기려 훗날 “백성에게 옷을 입힌 것이 농사를 시작한 옛 중국의 후직씨와 같다(衣被生民 后稷同).”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남효온(南孝溫)이 쓴 〈목면기(木綿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덕흥군의 미움을 받아 중국 남쪽 외진 땅 베트남에서 백설 같은 꽃을 보았는데 목화라는 것을 알고 붓두껍 속에 씨앗 세 개를 지니고 왔다. 그러므로 금수품목이긴 했어도 붓뚜껍에 숨겨들여왔다는 이야기는 극적효과를 위한 과장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후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는 실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보급해서 그의 이름을 딴 ‘물레’로 불리게 되었다. 또 손자인 문영(文英)이 맨 처음 베를 짰다고 해서 문영베에서 ‘무명베’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익점의 장인과 손자들이 모두 큰 공로자인 셈이다. 백성에게 옷을 입힌 공(衣服生民之功)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익점은 조선조 건국에 반대하며 고향 산청에 삼우당(三憂堂)을 짓고 이색 · 정몽주 등과 같은 길을 걸으며 지조를 지켰다.
도천서원(道川書院)은 1401년(태종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문익점(文益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54년(명종 9)에 도천(道川)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612(광해군 4)년에 중건하였다.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 송씨(宋氏)에 얽힌 목화이야기
정순왕후는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가 승하하자 계비가 된 인물이다. 영조 66세에 계비를 간택하는데 당시 15세인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인 그녀는 여러 질문에 출중한 지혜로 답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엇이냐 백성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옷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목화입니다. 그 밖에도 신분확인용을 부친의 이름이 적힌 방석이 나왔는데 앉지 않으므로 아무리 임금 앞이라도 해도 방석 위에 어버이의 성함을 써 놓았으니 감히 앉을 수 없다. 최고의 음식을 묻는 질문에 모든 음식의 기본인 소금이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감히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인물이었지만 사도세자를 반대하는 벽파(僻派)와 손을 잡고, 반대파인 시파(時派)를 탄압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신유박해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또 다른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 김씨(金氏)는 불행의 대명사인 단종의 비(妃)로 의덕왕 대비에 봉하여졌으나,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정순왕후도 같이 부인(夫人)으로 강봉되는 불행을 겪는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됨으로써 정순왕후가 되고 신위(神位)가 창경궁으로 옮겨졌다.
김홍도의 그림 가운데 물레 돌리는 여인이 보인다.
목화(木花) / 서정주
누님.
눈물 겨웁습니다
이, 우물 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있는 붉고 흰 목화(木花) 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섰지요?
퉁기면 울릴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다 바스라저 네리는데….
저, 마락(魔樂)과 같은 봄을 지내여서
저, 무지(無知)한 여름을 지내여서
질갱이 풀 지슴ᄉ길을 오르 네리며
허리 굽흐리고 피우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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