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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진 송씨의 상징 문충사(文忠祀)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08. 1. 12. 16:00

    대전 동구 용운동에 있는 대전대 가는 길에 들른 문충사(文忠祀)다.

    후손들이 주거하고 있을 텐데 안에서 문을 굳게 걸어 잠궈 들어갈 수가 없다.

    문충사는 우암 송시열의 후손인 송병선 송병순 형제의 제사를 모시는 사우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5적의 처단과 국권회복을 내용으로 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자결한 사람이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정신 투철했던 선인들의 삶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도, 대마도 유배생활 중에 면암 최익현이 굶어 죽은 것도 다 지고지순한 선비정신이다.

    영웅이 할거하던 난세는 세상이 시끄러웠으나 난세가 지나고 필부필부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니 어째 더욱 귀가 따갑다.

     



    문화재자료4호. 송시열의 후손인 송병선, 송병순 형제를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송병선(宋秉璿)·송병순(宋秉珣)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들 형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5적의 처단과 국권회복을 바라는 상소문을 올린 후 자결하였다.  원래 1908년 충청북도 영동(永洞)에 건립되었는데, 송병선의 순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66년 그의 순국지인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입구에 홍살문이 서 있고, 그 옆에 정면 5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인 외삼문 안에 용동서원(龍洞書院) 현판이 걸린 강당이 있으며, 그 뒤의 내삼문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다. 용동서원은 1970년에 건립되었는데,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송병순은 1888년(고종 25)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학문연구에 몰두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성토하는 격문을 지어 8도에 돌렸다. 1910년 망국의 비보를 듣고 통분하여 형의 뒤를 따라 음독 자결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문충사 http://ktk84378837.tistory.com/3521 숭절사 http://ktk84378837.tistory.com/6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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