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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화암사(花巖寺)와 안도현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08. 3. 23. 21:50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조선 숙종 37년(1711)까지 여러번에 걸쳐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한다. 

    아미타전(阿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안양교, 안양문, 안양루를 설치하기도 한다. 

    보물 663호인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식(下昻式) 처마는 국내 유일한 구조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에 국보 제316호로 승격되었다

    선조38년(1605년)에 지은 이 건물의 하앙은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로 처마와 나란하게 경사져 있다. 이것은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균등하게 받쳐 기둥에 전달한다. 

    쉽게 얘기해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구조보다 처마를 길게 내밀 수 있게 한구조다.

    극락전 앞쪽의 하앙은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나 건물 뒤쪽의 하앙은 꾸밈없이 뾰족하게 다듬었다.

    하앙식 구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많이 볼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유일하고 한다.

    하앙식구조에 빠져있다보니 극락전에 모신 아미타불도 유형문화재40호인 동종도 놓쳤다.

     

    극락보전의 소박한 창살.

     

    적묵당의 창살

     

     

    화암사 우화루 강당에 걸려있는 목어(木魚鼓)와 목탁(木鐸)은 손질하다가 귀찮아 마감한듯 투박하다. 목어는 본래 중국에서 유래된 법구(法具)인데 물고기가 평생 눈을 뜨고 깨어있는 것처럼 불교의 수행자도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뜻이 있다. 목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목어를 간소화시키다 보니 둥근 형태가 되었다. 예기(禮記)와 서경(書經)에도 나오는데 탁(鐸)이란 지금의 요령(搖鈴) 같은 것으로 요령의 혀가 쇠로 된 것은 금탁(金鐸)이고 나무로 된 것은 목탁이라고 하였다. 목탁은 세상을 일깨우고 바른길로 인도해준다는 뜻의 비유어로 사용한다.

     

    나무 물고기 / 차창룡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 맞는다

    여의주 뱉으라는 스님의 몽둥이는 꼭

    새벽 위통처럼 찾아와 세상을 파괴한다

    파괴된 세상은 언제나처럼 멀쩡하다

    오늘도 이빨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 하나가

    떨어져나갔지만

     

    문턱이 닳았나 애초부터 둥근가

     

     

    완주 화암사우화루(完州花巖寺雨花樓). 보물 662호.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운 것으로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한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은 기둥을 세워서 바깥과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2층 마룻바닥을 땅과 거의 같게 놓아 건물 앞쪽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화암사 오르는 길은 복수초와 얼레지 등 다양한 식생으로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꽃이 지고나도 철책 난간에는 여러 꽃 모양의 많은 토기를 매달아 사시사철 꽃을 보도록 배려하였다.

     


     

     

     

    안도현의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의 <잘 늙은 절, 화암사>

     


    잘 늙은 절, 화암사(花巖寺)   /  안도현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당시만 해도 화암사를 찾아가는 길은 반듯하지

    않았다. 전주에서 대둔산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가 완주군 경천면 소재지 근방에서 오른쪽으로 꺾는 길을 찾는 것도 몇 차례

    두리번거려봐야 가능한 일. 그러고도 작은 마을과 논밭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사람살이의 나지막

    풍경들을 다 살펴보고 난 뒤에 찾아오라는 듯 화암사는 그렇게 꼭꼭 숨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암사로 가는 길. 4월, 좁다란 숲길 한쪽에 가도 가도 얼레지 꽃이 지천이었다. 바람난 처녀처럼 꽃잎을

    까뒤집은 꽃. 그들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절 구경하러 산을 올라가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때는 길이 뚝 끊기고 계곡이 앞을

    로막기도 하고, 막혔다 싶으면 외나무다리가 길을 다시 이어주기도 한다. 마을을 지나올 때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만큼 걷다가

    보면 이번에는 벼랑이 턱하니 발길을 가로막는다. 벼랑에다 세운 철제 다리를 타고 올라와야 화엄사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절을 만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니! 문득 화암사가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고 지은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 입구에 있을 법한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이 경내로 들어서려면 작은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잊을 수 없다. 세월에 닳은

    문턱을 처음 넘어설 때, 나는 마치 어릴 적 외갓집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ㅁ자형 구조를 가진 경내로 들어가면 그곳은 절이 아니라 여염집의 편안한 안마당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때의 적막은 또

    얼마나 큰 위안인가. 전에는 거기에 두 마리의 흰둥이가 살았는데 지금도 그 아들이나 손자뻘 되는 녀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녀석들은 뒷산 다람쥐가 도토리 굴리는 소리까지 훤히 다 듣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쌩 하니 달려갔다가 소득 없이 터덜터덜

    돌아오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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