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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밀꽃 필 무렵-
    기타 etcetera 2008. 9. 29. 16:09




    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는 허생원이 동업자인 조선달과 동이와 함께 내일 열리는 대화장을 보려고 봉평에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원조의 맛을 보려면 보름이 아니더라도 달이 좋은 밤을 맞이했어야 옳을 일이다.

    자연도 공간도 시간도 잃어버린 현대에 이럴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메밀밭은 달밤에 보아야 제 맛이요 제 멋이란 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직 초등교장이며 현직 초등교장인 두 분과 함께 번개 모임으로 간 선운사 꽃무릇 및 학원농장 메밀꽃 촬영은 떼거지 관광객이 몰려드는 오후를 피해 잘 다녀온 셈이다.

    오전도 사실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딜 가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카메라 봇짐을 짊어진 카메라맨이 부지기수다.

    상업화 기계화가 몰고온 취미의 획일화는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가 될 것이다.

    선운사 꽃무릇축제장 주위는 관람객의 발길이 닿지 않게 보호 차원에서 가는 곳마다 출입통제선을 둘렀는데,

    통제선을 무시하는 극성스런 사진사들과 관리자의 호각소리 및 투정소리가 한바탕 오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니 그 속을 알겠거니와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한발 물러 생각하면 참으로 싸가지 없는 이기심에 불과하다.

    특히 야생화를 찍을 때는 꽃 주변 사방 1입방미터는 족히 뭉개지고 마니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는 골치덩어리다.

    어떤 이들은 배경을 검게 한다고 잘라다가 찍고서는 버리기도 한다.

    그만해도 다행인 것은 귀한 것일수록 뽑아다 혼자 보겠다고 화분에 가꾸는 일인데백이면 백 필경은 죽고마니 멸종의 속도만 빨라질 것이다.

    한술 더 떠 야생화 판매상에서는 직접 싹쓸이 채취를 해다 팔기도 하고,

    소비자들은 그들대로그런 상품을 주문하기도 하니 시장원리에 따라 피해를 보는 것은 자연 뿐이다..

    꽃무릇을 찍다보니 어떤 이가 두 송이를 꺽어다 이끼 낀 고목나무에 꽂고 찍었는지 방치되어 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좋은 소재인 줄 알고 연신 자리를 다투어 찍어대는데 예전엔 나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진은 절대 좋은 사진이 될 수 없는 것이 인위적인 가식이 넘치는 때문이다.

    보는 순간 이기심이 발동하여공범이 되고마는 것이다.

    대학에 사진학과가 설치된지 오래고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디지탈타메라 강좌를 시작한 지도 10여년이다.

    사진 인구가 몇 백만은 될 터인데 기술과 기능은 난무하나 윤리는 강의조차 않는다.

    저 화려한 꽃무릇과 잔잔한 메밀꽃을 보는데도 윤리의식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으며 가르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고창 학원농장.


     


    메밀꽃 밭을 지나며 /  고재종

     

     

    누이야, 달빛 한 자락만 뿌려도

    서리 서리 눈물떼 반짝이는 이 길을

    사나이 강 다짐으로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누이야,잔바람 한 자락만 끼쳐도

    마음의 온갖 보석들 싸하니 이는 이 길을

    사나이 꺼먹 꺼먹 차마는 못 넘겠다.

    지나온 절간에서 댕- 울리는 종소리가

    한 귀에서 다른 귀로 빠져나가는 순간

    영혼의 쇠든 것이 싸악 씻기는 경우였다

    그리하여 멧새 몇마리 뒤척이며

    깃에 묻은 이슬 부리는 소리에도

    환약 먹은 듯 환약 먹은 듯한 마음 자린데,

    누이야,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나는 더 더욱 명부의 꽃밭은 모르고

    이렇게는 메밀꽃밭을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소금 같은 소금 같은 눈물의 보석 일구어

    은하수 하늘에다 서걱 서걱 옮기어 놓고

    이렇게는 이 가을 차마는 못 넘겠다.

     

     

    수록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 시와시학사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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