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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타 etcetera 2009. 1. 30. 21:57
하늘빛이 참 곱다.설날 하늘은 너무 고와서 서럽다.설의 어원은 '섧다' 라는 설이 있다.한 해를 그냥 보내기에는 웬지 서럽기만 하다.아무래도 지난 한 해의 삶이 뭔가 부족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잊을 수 없었을까. 간직하기조차 버거운 지난 해보단 그래도 새해를 맞는다는 설렘이 더 큰 모양이다. 그걸 알고 지레 겁을 먹은 눈길은 이미 다 녹아버려 다행이다.서해쪽이 난리라는 소식이다.지난해 섣달 초닷새 할머니 기제를 앞두고 이젠 제사 못 지내겄다.해서 제기를 장만하고 가져온 제사였다.차례상은 어찌할까요? 느덜 편한 대로 해라 하셨건만왔다 갔다 해서는 못쓴다는 속설에 기축년 새해부터는 큰아들인 내집에서 지내기로 했다.기제 때마다 음식을 해 나르던 아내는 좋아라 한다.오후에 제수가 와 음식 장만을 돕는 사이에 우선 노부모를 모셔왔다.결혼 25년이 되었건만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식 집에 머문 적이 없는 아버지다.모처럼 용기를 내어 아버님 저랑 요기 사우나나 다녀 올까요?아 실허~그럼 목욕탕에 뜨거운 물 받아 목욕좀 하시지요.아 글세 실허~아침에 큰동생 식구들과 인천서 39살 아직도 노총각인 작은동생이 모여 들었다. 34평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는 비좁은 듯.머슴아들이지만 서로간 별 말이없어 조용한 차례를 마친다.말없는 남자들 틈에서 며느리들도 입을 다물고 산다.떡국 한 그릇으로 한 살을 먹은 다음 무에 그리 바쁜지 우루루 일어났다.시골집을 지나쳐서 아버님 핏줄이라곤 하나 뿐인 개심리의 사촌동생,당숙에게 세배를 가는 우리 형제들은 설 쇠는 일이 외려 복잡해졌다.다과상을 물리자마자 방안이 갑갑한 아버지의 재촉으로 안녕 하고 돌아왔으나농이 없는 식구들은 요란한 TV 연예 프로에만 가끔 반응한다.시골집은 예나 지금이나 마당이고 문틈에서고 가릴 것 없이 황소바람만 휑휑 불어댄다.우리집 설 풍경이다.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난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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