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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사람 snowman
    기타 etcetera 2010. 1. 4. 22:52




    서울은 26 센티 강설량을 기록하면서 1937년 관측 이래 최대 폭설이라고 법석이다.

    기상청은 5센티 온다고 예보했다가 빗나간 예보를 했다고 몰매를 얻어 맞는다.

    충청지역은 하늘도 약속을 지켜 진짜 5센티 정도 내렸다.

    거리는 눈을 치우느라 북새통이고 차들은 엉금엉금 기느라 난장판이다.

    염화칼슘 뿌릴 새도 없이 바퀴에 밟혀 녹아내린 시커먼 길바닥은 미끄럼틀이 되어 아수라장이다.

    여기서 미끌 저기서 팽그르르 이놈이 스르르 저놈이 쿵 저쪽에서 빵빵 이쪽에서 뻔쩍 ,,,

    그러거나 말거나 동심의 아이들은 멋도 모르고 좋아서 눈싸움을 하며 개처럼 날뛴다.

    동네 공터에, 미래의 눈 조각가인 덜 떨어진 고딩(고등학교 학생)하나가 아랫이빨에 보철을 한채 헤벌쭉 웃는다.

    가마솥에서 꺼낸 랍스터 같은 붉게 언 손으로 한 시간 반 걸려 만들었다고 아직도 토닥이며 자랑이다.

    어리고 순박하고 사랑스런 사람의 손끝이 몸에 닿으면서 눈사람은 움찔 살아 움직인다.

    외롭지 않아 즐거워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이 귀에 걸려 있다.

    그러면서 이게 얼마나 갈지 걱정을 한다.

    이렇게 정성들여 만들었는데 며칠은 가겠지 하고 위안을 해준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보이지 않을 것임을 조각가도 나도 짐작을 한다.

    (이튿날 어김없이 꿈틀거리는 파괴본능에 의해 눈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호기심 많은 자매가 엄마 손에 이끌려와 모델이 도어 주었다.

    설경을 보재서 나온 아내와 더불어 보문산 산자락에 다다라 눈싸움이 벌어졌다.

    눈은 눈사람 만들기 딱 좋게 눈싸움 하기 딱 좋게 쫀득거렸다.

    등산화에 밟히는 눈 소리도 뽀드득 뽀드득 모처럼 선정적으로 들려왔다.

    눈덩이가 흩어지면서 목덜미를 파고 들자 차갑고도 서늘한 기쁨이 흘러내렸다.

    잠깐 눈을 즐기는 사이 화면에는 온 나라가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문화동 상아아파트 앞.

     

     

    눈사람  /  오세영

     

     

    코는 코대로, 눈은 눈대로

    이목구비耳目口碑

    제자리에 굳어 있지 않는 것을

    어찌 얼굴이라 할까,

    한 세상 모진 추위 홀로 사는 길이라면

    돌아와 언 몸을 굳이 녹여 무엇하랴.

    풀어지면 남는 건

    물과 흙 그리고 한 순간의

    피었다 사라지는 봄바람,

    지금의 네 고운 얼굴, 혁혁한 형자形姿

    집착과 애욕으로 굳혀진 얼음일 뿐

    누가 이 혹한의 벌판에

    눈 사람 하나를 이렇듯

    세워 놓았나

     

    수록시집 적멸의 불빛 ( 문학사상사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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