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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님도 쉬어넘는 월류봉(月留峰)-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0. 2. 5. 18:31

     

     

    월류정 http://ktk84378837.tistory.com/1707 http://ktk84378837.tistory.com/4344하늘을 찌를듯한 월류봉과 선녀처럼 단아하게 서 있는 월류정이다. 한천정사에서 우러러 보면 달이 머물다 갈 수 밖에 없는 절경이다. 한천(寒泉) 냇가에 서재를 지어 글을 가르친 우암(尤庵)이 부럽기 짝없다. 후세에 우암을 기리는 한천서원이 세워졌다가 대원군 때 철폐되고, 1910년에 한천정사(寒泉精舍)를 건립하였다.(안내문은 띄어쓰기가 엉망이다.) 당대 우암의 세력이 어찌나 컸는지 조선 반도 구석구석 풍광 좋다는 곳에는 그의 서재는 물론 그를 기리는 유허비가 서 있다.

    우암이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외가에서 출생한 회덕 은진송씨이니 이 지역은 물론이요, 대전 가양동에 우암사적공원 역시 잘 꾸며져 있다. 이조판서를 하면서 북벌을 추진하였으나 효종이 죽으면서 중지되었다. 우암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월유봉이 있는 한천정사로 낙향하여 세월을 보냈다. 왜 우암이 이곳을 낙향처로 택했는지는 '풍광이 너무 빼어나서' 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이 「유냉천정(遊冷泉亭)」이라는 한시를 지었다. 학문적으로는 성리학의 대가인 율곡-김장생-김집으로 이어지는 예학을 중시하여 당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서인의 우두머리였으나 남인 처벌에 강경파였던 우암은 노론으로, 제자인 윤증은 소론으로 갈라져 나갔다.윤증은 우암과는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논산 노성 교촌 사람이다.은퇴하여 화양계곡에 화양서원을 세우고 은거하였으니 그곳에 유허가 남아 있다.수원에도 그의 위패를 모신 매곡서원이 있다.좌의정까지 역임하였으나 숙종의 아들 경종의세자 책봉시 반대하는 상소로 희빈 장씨의 미움을 사 귀양간 제주도에도 흔적이 있다.

    제주도길에 보길도를 들렀는데 거기 백도리 바위에 쓴 글이 있다는데, 그 내용이 아래와 같으니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귀양에서 풀려 오다가 정읍에서 사사()되었으니 그곳 또한 범상치 않은 곳이다.오종원 경북대 교수가 분석한 고종일기()의 한 대목을 보면 이렇다. “서리()가 선생에게 ‘임금께서 약을 내리셨습니다. 약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했다. (제자) 이후진이 서리에게 ‘대감의 병환이 위중해 들을 수가 없으니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말씀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서리가 조금 앞으로 다가가 귀에 대고 다시 고하니, 선생이 곧바로 몸을 움직여 일어나 앉아 상의를 가져오게 하셨다. 직령(·두루마기)을 찾아 가져다 드리니 선생이 팔을 들면서 입히라고 명하셨다.” 1689년 6월 8일 유배지인 제주에서 한양으로 압송 도중 초산(·현 정읍)에서 사약을 받은 우암 송시열(1607∼1689·사진)의 임종 순간을 담은 고종일기() ‘초산일기’의 한 대목이다. 제자 민진강이 기록한 초산일기는 병으로 옷 입을 기력조차 없었지만 몸을 굽혀 사약을 내린 임금의 전지()를 받들고 사약 세 보시기(그릇)를 마시며 의연함을 보인 우암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준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270122 

     

     

    그를 배향한 한천서원이 철폐된 후 지은 한천정사(寒泉精舍) 있다. 이 이름을 따 한천팔경이라 이름하였다. 담양 소쇄원에도 같은 이름의 정자가 있다. 한천정사는 본래 주자가 모친상을 치른 뒤에 시묘살이 하던 묘소 옆에 정자를 짓고 학자들과 강학하며 저술에 힘쓰던 곳이라고 한다. 영동.

     

    八十三歲翁(팔십삼세옹) 83세 늙은 이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한마디 말이 어째 큰 죄가 되어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초구에 옛 효종의 은혜 서려 있어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黃俊良) 유냉천정(遊冷泉亭)이라는 한시를 지었다.



    소매 속에 가학루만을 휴대하다가(袖裏全携駕鶴樓) 

    취흥에 다시 냉천정을 유람하였네(餘O又作冷泉遊) 

    석양에 머리 돌리니 뜻이 끝없는데(斜陽回首無窮意)

    함께 봉우리에 드는 가을 젓대 소리(倂入峯頭一笛秋)

    -<금계집>

     

     

    월류봉 / 홍여하(洪汝河, 1620~1674)

     

     

    日落江空暮靄橫 해 저문 빈 강에 저녁 안개 자욱하고

    更憐寒月靜中生 찬 달이 고요히 떠올라 더욱 어여뻐라

    東岑玉立三千長 동쪽 봉우리는 삼천 길 옥처럼 서서

    留得淸輝夜夜明 맑은 달빛 잡아놓아 밤마다 밝네

     

    -<목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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