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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의 성벽과 고루(鼓樓) 및 종루(鐘樓)문화 culture/해외 foreign travel 2025. 6. 9. 00:00
중국 서부의 산시성(섬서성, 陝西省, Shanxi)의 시안(西安, Xi'an)은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에 널리 알려진 문화고도(古都)이다. 중국의 13개 조대가 도읍을 정한 도시이고 특히 완전하게 보전된 성벽과 진시황 병마용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명소이다. 시안(西安)의 옌안(延安)은 시진핑(習近平, Xi Jinping) 현 중국 국가주석 부부의 고향이다. 시안(西安)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대면한 것은 석류나무꽃이다. 서안의 시목(市木)이자 시화(市花)다.
시안(西安)이 실크로드의 출발지라 해서 여행 전부터 귀에 못이 박혔다. 그래서 서안시역사건축 사주지로군조(絲綢之路群雕)라는 건축물을 찾았다. 실크로드 2100주년 기념하여 장안성 개원문 유지외에 위치한다. 1987년 马改戶 작. 작품에는 서역과 교류 및 무역은 이곳 시안과 뤄양(洛陽)을 거쳐 신라에까지 뻗쳐졌고, 회회족나라에서 온 회회아비와 낙타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회족거리에 세운 회족가(回族家)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다.
고려 가요인 쌍화점(雙花店)에 회회아비가 등장한다. 남녀상렬지사로 알려진 쌍화점은 국어교과서에서 배우기도 했고,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바도 있다. 쌍화점의 쌍화는 만두를 뜻하니 만두 가게를 말한다. 속을 채운 만두를 오므린 부분이 꽃 같다 하여 쌍화(雙花)이다. 꽃의 성기와 만두의 모양과 인간의 성적인 기호를 겹쳐놓은 은유라 해석한 이도 있다. 만두는 몽고의 음식이며, 회회아비는 몽골인이거나 아랍인이다. 말이 나왔으니 쌍화점 노래 첫 연을 끝장면에 소개글로 실었다.
서안성장(西安城墻) 동문 장락문(长樂门)으로 입장했다. 서안성벽엔 4대문이 있다. 동문이 장락문, 서문은 안정문(安定门), 남문은 영녕문(永寧门), 북문은 안원문(安远门)이다.
장락문(長樂門)을 들어서면 장락각(長樂閣)이 떠억! 회화나무 노거수가 푸릇푸릇! 동문이니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고 욱일동승(旭日東升) 현판이 따악! 회화나무는 중국의 국목(國木)이다.
낙상예방을 위해 지붕의 치미와 잡상들이 한 줄에 묶여 있다. 답사 중 만난 고건축물이 모두 이런 조치를 해두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눈앞이 어지러워 고개를 드니 사극 촬영하는 줄 착각한 결혼앨범촬영! 고건축물이 있는 명승지마다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
장락문에 오르니 자기동래(紫氣東來) 현판이 보인다. 동주(東周) 때 함곡관(函谷關)의 사령관인 윤희(尹喜)는 지방 사람이었다. 동쪽을 보니 붉은해 앞에 있던 자줏빛 구름이 황하와 홍농강 남쪽에서 점점 짙어지므로 이인(異人)이 올 것을 예견하였다. 마침 궁궐을 떠나 함곡관을 거쳐 서쪽으로 은둔 생활을 하려던 노자(老子)가 백발에 긴 수염을 나부끼며 푸른 소를 거꾸로 타고 함곡관 앞에 서 있었다. 윤희의 청으로 노자가 머물면서 도덕경 천자를 쓴 뒤에 떠났다. 그곳에 태초궁(太初官)을 짓고 尹喜가 자줏빛 바람(紫風)을 보던 곳에 첨자루(瞻紫樓)를 세웠다. 이후 자풍 (紫風)은 행운을 상징하였다.
종(钟=鐘), 명(明)의 융경(隆慶) 원년(1567)에 예기(禮器)로 제작되었으며 제사 때나 시간을 알리거나 경시용(警示用)으로 사용되었다.
장락문과 마주보는 장락각을 배경으로 여기서도 촬영이다. 황제와 황비가 되어 궁궐을 거니는 기분은 어떠할까.
마침 성벽을 자전거로 투어하는 외국인 관광객 N.Z. TEAM을 만나기도 했다.
장락각에서 본 자기동래(紫氣東來)의 장락문
장락각에서 친구를 기념촬영해 주었다.
산이 많고 돌이 많아 석성을 쌓은 우리와 달리 13km에 이른다는 서안의 성벽은 몽땅 벽돌로 쌓았다. 탑(塔)도 마찬가지로 전탑(塼塔)이다.
장락문을 나와 북원문회방문화풍정가(北院門回坊文化风情街)로 향했다. 전장 1km가 넘는 일명 회족거리, 명청(明淸)에 이르러 조성되었으며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거리다. 북원문은 4대문 이름이 아니라 거리 이름이다. 본래 북원문(北院門)은 서안성장의 북문인 원문을 가리키지만 회족거리는 동문인 장락문의 인근이다.
회족回族(Huí zú)동상,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중국소수민족의 하나로 한족화되어 중국어를 사용하는 무슬림이다. 당(唐)부터 원(元)까지 유럽인, 남아시아인, 중동인들이 회흘(回吃) 지방을 건너와 정착하였다. 중국과의 무역에 종사하던 이들은 겨울에 중동으로 갔다가 날씨가 풀리면 중국으로 돌아와 회족(回族)이라 하였다고 한다. 윈난성 여강고성 답사 때는 나시족가의 모습을 보았었지...
시양시(西羊市), 시안을 방문할 때 고대 수도의 간식과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이 회족거리다. 원나라 때 형성되었으며 원래는 양과 양고기 거래가 주를 이루던 양시(楊市)였으나 지금은 동쪽은 관광서비스산업, 서쪽은 원주민과 원시거주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장통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택이 하나 있다. 고가대원(高家大院, Gaojia dayuan)이라 하는데 이는 명나라 때 황제가 고악송(高岳松)이 12살때 과거시험에서 2등을 해 하사받은 사합원(四合院,)식의 저택으로 중국 전통 건축 양식을 자랑한다. 면적이 7천여평(2,300㎡)에 달ㅎ하는 대저택이다. 대나무 주렴아래 등롱이 줄지어 있고 우아한 작은 방안에 그림과 서예작품, 정교한 자수품들이 걸려 있어 문인의 집임을 문외한들도 느끼게 된다.
박애(博愛), 아형(雅馨) 등 정교한 조각의 돌벽은 아주 높다. 영장(影墻)이라고 하는데 외부인이 저택안을 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녹나무 조각으로 된 병풍,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분류하려는 주인의 의사를 엿볼수 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녹나무 가로수가 많이 보인다.
시양시(西羊市) 끝자락에 나타나는 고루(鼓樓)
고루(鼓樓)의 북문에 성문우천(聲聞于天) 사자 편액이 보인다. 이는 학명구고 성문우천(鶴鳴九皐 聲聞于天)에서 온 말인데 학이 깊은 물가에서 울면 하늘까지 그 소리가 퍼진다, 즉 현명한 사람은 어느 곳에 있어도 반드시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의미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쪽 편액은 문무성지(文武盛地)이며 학명구고(鶴鳴九皐)는 후대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의 동방삭(東方朔)편에 재등장한다.
동방삭(東方朔)은 우리나라에도 ㅇ명해진 인물인데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으로 자는 만청이며, 벼슬이 금마문(金馬門) 시중(侍中)에 이르고 해학(諧謔)과 변설로 이름을 날렸다. 전설에 동방삭이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고도 하고,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다고도 한다. 원래 별의 요정이었다는 말도 있다. 시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고루(鼓樓)는 명나라 홍무(洪武) 13년(1380년)에 건립됐다. 누각 위에 큰 북을 놓아두고 매일 북을 쳐 시간을 알렸다.
지쳐가는 몸뚱아리 몇 미터 발걸음을 재촉하니 나타나는 종루가 피로감을 앗아간다. 종루(鐘樓)는 시안시 한 복판의 성곽 안 동서남북 4개 도로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누각 위에 큰 종을 걸어 놓고 긴급 사태나 시간을 알렸다. 정방형 기단 위에 벽돌과 나무로 지었다. 겹처마이며 높이 36m, 면적 1,377.64㎡의 누각형 건축물이다. 2층 구조이며 각 층마다 다양한 형태의 고전적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雙花店 / 고려가요
雙花店에 雙花사라 가고신댄 /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回回아비 내손모글 주여이다 / 회회인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말싸미 이店밧긔 나명들명 / 이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 ~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르러거디러 다로러
긔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잔대 가티 덥거츠니 업다 / 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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