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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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메뚜기 Oxya chinensis sinuosa동물 Animal/메뚜기 여치 귀뚜라미 Orthoptera 2024. 10. 10. 21:27
메뚜기의 교미. 도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방중술(房中術)에 접이불설(接而不泄)이라 했거늘...벼메뚜기 Oxya chinensis sinuosa Mistshenko, 1951. 메뚜기과 남방매미충속. 몸길이 27~37mm. 8~10월에 나타난다. 무분별한 농약사용으로 귀한 몸이 되었으나 유기농을 하는 논이나 그 주변의 논두렁에서 가끔은 볼 수 있다. 유충의 앞가슴등판에는 흰 줄무늬가 있다. 몸빛은 잔날개벼메뚜기와 같다. 보문산.삼국사기에 대규모 메뚜기 출현으로 인한 30여회 이상의 피해 기록이 있다 하고, 동서고금 메뚜기 피해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다만 벼메뚜기가 아닌 풀무치로 해석이 된다. 산골짝 논두렁에서 잡아 볶아먹던 낭만의 메뚜기가 아니다. 아프리카에 등장했던 500km에 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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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 모신 군위 인각사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8. 6. 16. 10:17
군위 석굴암을 보고 서둘러 인각사(麟角寺)를 찾았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三國遺事, 국보 306호)를 집필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는 한국 고대의 신화와 민간설화와 향가 등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 와 함께 고대문학과 역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된다. 삼국유사 기이제이(奇異第二) 문무왕 법민편을 보면 깜짝 놀랄만한 거대농담이 펼쳐진다. "왕이 처음 즉위한 때는 용삭(龍朔) 신유년(661)이었다. 사비 남쪽바다에서 여자의 시체가 나왔는데 키가 73척이고 발길이가 6척이며 음부의 길이만 3척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은 키가 18척이라고도 했다." 1척(尺)은 한 자인데 보통 30cm로 계산한다. 73척이면 21.9m 이고 17척이라 해도 5.1m 거인이다. 한국판 걸리버여행기의 인물인 셈이다. 절은 아담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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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대왕암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5. 8. 24. 16:30
장생포 지나 새로 세운 울산대교를 보고 대왕왕공원 1만5천여 그루 해송숲을 지나 절경 중의 절경인 대왕왕을 찾는다. 경주에 신라 30대 문무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죽어서도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하여 대왕바위(댕바위)에 장사를 지냈다. 뒤이어 죽은 문무왕비(자의왕후) 또한 설화이지만 남편을 따라 호국룡이 되어 울산 앞바다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호국 영령이시여! 바위 절벽 아래서는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낚시에 열중이다. 대왕암에서 뒤를 보면 울기등대가 멀리 보인다. 약간 비켜서면 현대중공업까지 보인다. 사람 얼굴 형상의 돌무덤이 눈길을 끈다. 경주 대왕암 http://ktk84378837.tistory.com/1683 울산 대왕암 http://ktk84378837.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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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瞻星臺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11. 7. 22. 21:26
아래는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개성 만월대 서쪽에 있는 첨성대 기대 https://youtu.be/9A_GYk0zFGs 첨성대(瞻星臺) /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첨성대는 월성(경주) 가운데 우뚝 서 있고 瞻星臺兀月城中 옥피리 소리는 만고의 바람을 머금었네 玉笛聲含萬古風 문물은 때를 따르니 신라시대와 다르지만 文物隨時羅代異 아아 산과 물은 고금이 한가지로다 嗚呼山水古今同 첨성대(瞻星臺) /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이이화서암천맥(離離禾黍暗阡陌) 나란히 자란 벼들로 둑길은 보이지 않는데 중유숭대고백척(中有崇臺高百尺) 한가운데에 백 척 높이의 대가 솟아있네 근연황온지중심(根連黃媼地中深) 뿌리를 황토 땅 깊숙이 내리고는 영대청산운외촉(影對靑山雲外矗) 청산을 마주하며 구름 밖으로 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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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 문무대왕릉 (慶州 文武大王陵)풍경 landscape 2010. 3. 2. 21:33
호국 영령이시여! 경주 문무대왕릉 (慶州 文武大王陵) 사적 제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이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