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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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그늘 아래풍경 landscape 2022. 8. 8. 22:17
유회당 남간정사 내원사 국립대전현충원 한밭수목원 백일홍 / 학봉 김성일 百匚禪房知畿枝 백방선방지기지 백겹으로 선방을 둘러 있는 가지 몇이나 되나 更着紫微相發揮 갱착자미상발휘 배롱나무 꽃도 피니 서로 조화이루네 無窮花色眞宜晩 무궁화색진의만 무궁화꽃 늦게 피어 첨으로 좋은데 淺深先後自芳菲 천심선후자방비 연하고 진한 꽃이 차례로 향기를 풍기네 - 학봉일고(鶴峰逸槁,1649) 백일홍 / 성삼문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對爾好衡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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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송애당 松崖堂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6. 3. 9. 13:03
조선 효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송애당(松崖堂) 김경여가 지은 팔작지붕 형태의 별당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가 환도 후 비분강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귀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호 역시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 않는 소나무의 굳은 절개와 우뚝 선언덕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는 뜻이다. 대전시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월류정 http://ktk84378837.tistory.com/1707 http://ktk84378837.tistory.com/4344 이지당 http://ktk84378837.tistory.com/1845 남간정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417 http://ktk84378837.tistory.com/407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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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남간정사(南澗精舍)의 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4. 8. 22:56
남간정사(南澗精舍)는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을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건축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남간은 주자의 시에서 왔다는 운곡남간(雲谷南澗)의 준말이라는데 양지쪽 산골짜기 개울물 정도의 뜻이니 뒤편 고봉산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이 정사에서 우암은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강학했고 그의 사후에는 제자들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목판으로 새긴 곳이다. 정조 임금이 서인과 노론의 영수이던 우암을 존숭하여 송자라 하였고 그의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이 송자대전이다. 보수가 끝나 새 건물 같은 남간정사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소제동 방죽 옆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었던 기국정(杞菊亭)을 옮겨온 것이다. 회덕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우암 송시열(1607~1689)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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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남간정사(南澗精舍)의 겨울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2. 12. 8. 21:06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남간정사는 유형문화재4호. 별당건물인 기국정(杞菊亭)은 주위에 구기자와 국화가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산사나무와 직박구리. 우암사적공원의 덕을 널리 베푼다는 뜻의 덕포루(德怖樓). 석파정 https://ktk84378837.tistory.com/4956 월류정 http://ktk84378837.tistory.com/1707 http://ktk84378837.tistory.com/4344 송시열의 남간정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417 http://ktk84378837.tistory.com/407 송시열유허비 http://ktk84378837.tistory.com/1068 赴京(벼슬하여 한양에 나아감) / 宋時烈 錄水喧如努 녹수훤여노 녹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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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월류정 月留亭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2. 11. 5. 14:39
충북 영동군이 자랑하는 한천팔경 가운데 달(月)이 머물다(留) 간다는 절경이 407m 월류봉이요 그 아래 봉우리에 월류정을 지었다. 달밤의 정경을 봐야 제격일 터. 한천팔경의 으뜸이다. 월류정을 따라 내려오다 보이는 정자가 있다. 우암 송시열이 머문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시열유허비각이 감나무 사이로 보인다. 그를 배향한 한천서원이 철폐된 후 지은 한천정사(寒泉精舍) 누각이 있다. 담양 소쇄원에도 같은 이름의 정자가 있다. 한천정사는 본래 주희 (朱熹) 즉 주자가 모친상을 치른 뒤에 시묘살이 하던 묘소 옆에 정자 회암(晦庵)을 짓고 학자들과 강학하며 저술에 힘쓰던 곳이라고 한다. 송 건도(宋 乾道) 2년 주희 41세(1165년) 때이다. 주희의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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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기념관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1. 12. 14. 19:54
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기는 시대와 동서를 막론하는구나. 대전 동구 가양동 65 우암사적공원 내 송시열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시열 초상-작가 미상이지만 국보239호. 남간정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417 http://ktk84378837.tistory.com/407 송시열유허비 http://ktk84378837.tistory.com/1068 월류정 http://ktk84378837.tistory.com/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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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송시열유허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0. 9. 20. 20:02
유허비의 전면과 후면 우암 송시열이 태어나고부터 26세까지 보낸 이원면 구룡리 외가에 정조2년 1778년 세워진 유허비. 노론의 영수로 효종의 북벌정책을 추진하였으며 현종때 좌의정에 올랐다. 숙종 때 세자책봉에 반대하다 제주로 귀양을 갔다가 신문을 받기 위해 돌아오다 남인의 책동으로 정읍에서 암살당했다. 송시열유허비 옆에 충신 곽자방의 비각이 있다. 곽자방은 임란 때 의병장 조헌 휘하에서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으나 금산전투에서 희생되었다. 우암 송시열유허비와 한자리에 있는 곽자방은 외가인 선산곽씨 인물이다. 우암 송시열의 부친인 睡翁 송갑조가 살던 집터에 세워진 유기비. 우암 송시열은 아버지 집인 이곳에서 태어나 유허비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여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사유재산 이용에 장애가 많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