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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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545호 괴곡동느티나무, 대전 최초의유일문화 culture/천연기념물 natural monument 2015. 2. 10. 21:30
이름도 괴걸스런 괴곡동(槐谷洞) 새뜸마을에 대전지역에선 처음으로 느티나무가 2013년 7월 천연기념물 제545호로 지정되었다. 괴곡의 괴는 괴산의 괴처럼 본래 회화나무를 뜻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느티나무라는 뜻도 추가되었다.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의정부를 괴부. 궁궐을 괴신. 승문원을 괴원. 삼정승을 괴정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한편 회화나무는 양반수니 학자수라 하여 양반가에 많이 심었던 콩과의 교목이다. 괴곡동 느티나무의 수령은 천연기념물 382호인 괴산의 느티나무 보다 100년 젊은 700년, 조선 중엽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터이니 영험이 없으면 이상할 터. 장엄하기 이를데 없어 마을의 수호신이라 할 만하여 한꺼번에 푸른 잎이 돋아나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칠월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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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죽나무 열매 Cedrela sinensis초목류 wild flower/멀구슬나무과 Meliaceae 2015. 2. 10. 21:00
참죽나무 Chinese Toon, 학명 Cedrela sinensis. 한자어로는 진승목(眞僧木), 저수(樗樹), 산춘수(山椿樹). 향춘수(香椿樹), 죽나무에 먹을 수 있는 참죽나무와 먹을 수 없는 가죽나무(假僧木)가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참죽나무가 가죽나무로 뒤바뀌고 가죽나무는 개가죽나무가 되었다. '싸다'는 물건에 비해 값이 넘친다는 뜻이고 반대로 물건에 비해 값이 헐하다는 말이 '비싸다'인데 언젠가부터 뒤바꿔 사용하는 것처럼. 그래서 사실은 먹지 못할 가죽나무를 먹고 싼 물건을 비싸게 사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가죽나무의 새 이파리를 따서 나물로 무쳐 먹고 고추장 양념을 발라 말려서도 먹고 부각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요즘은 장아찌로 먹는데 특유의 향을 나도 좋아하지만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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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민속마을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2. 10. 20:58
아산.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 외암마을은 북쪽의 설화산을 최고봉으로 그 남서쪽의 약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는 낮고 마을 뒤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 조건에 따라 마을의 집은 대개 남향 또는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는 서북 계절풍을 막아 주는 좋은 기후 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마을에는 원래 여러 성씨가 살고 있었는데 조선 명종 때 예안 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게 되었고, 그 후손 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차츰 예안 이씨를 동족으로 하는 동족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에 마을 이름을 '외암'으로 기록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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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성지성당문화 culture/기독교문화 Christian Culture 2015. 2. 8. 22:50
마리아와 예수. 성당 외관. 성당 입구. 성당 내부. 성당 내무 창문. 고해실. 순교자 묘지. 박물관. 박물관(옛 사제관)에 들어가면 유명한 ‘이명래 고약’이 전시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종기 없는 사람이 없었고 이명래고약 붙여보지 않은 사람 없을 정도로 종기치료의 특효약이었다. 종기 환부에 붙여놓으면 검은 고약에 노란 농덩어리가 붙어나와 환부에 구멍이 뽕 뚫렸다. 많은 사람들이 종기로 고생하자 공세리성당의 에밀 드비즈 신부가 종기 퇴치 고약을 제조했고 그 방법을 신자인 이명래에게 전수했다. 이명래는 1920년 서울 중림동에 이명래고약집이라는 진료소를 연다. 그의 사후 사위인 이광진에 이어 그의 사위인 임재형에 의해 서대문구 신촌동에 "이명래 고약집명래 한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령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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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개태사(開泰寺)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5. 2. 5. 23:17
삼존석불입상의 형태가 아주 흥미로운데 부처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갑옷 입은 무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머리가 큰 편이고 어깨가 벌어진 상체를 갖고 있으며 손은 육중한 모습을 하고 있다. 후백제 세력을 위압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태사 창건의 뜻과 부합한다고 하겠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절단된채 방치되어 있다가 시멘트를 발라 복원을 하였다. 얼굴은 기본적으로 충청남도 청양군 소재 장곡사 철불좌상과 비슷하다. 복원전의 모습(국가문화유산포털) http://non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nonsan&dataType=01&contents_id=GC02002726 삼존불이 겪은 수난은 민심 때문일까 (daum.net) 철확(鐵鑊), 원래 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