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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가18
    풍경 landscape 2017. 12. 29. 16:01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원합강 1길 262-6

     

     

    폐가를 어루만지다 / 양진영

     

    허물어지는 것은 새것을 위한 눈부신 산화

    나는 철거될 농가의 마룻바닥에 가만 귀 기울인다

    그들이 나눈 말이 옹이구멍에서 바스락대고

    안 보았어도 떠오르는 정경이 살포시 열린다

    문풍지에 꽃핀 청태靑苔는 그들의 회한 혹은 눈물의 자국

    뒤틀린 문틀만큼 가족이 부서지는 아픔도 맛보았으리라

    거북 등처럼 갈라진 목재에 왜,

    산골에서 밭을 일구고 사는 노모의 손등이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인연의 무결이 배어 있을까

    헐리는 것은 거룩하다 그것은 촛농과 마찬가지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히고 남은 잔해이므로

    뜨락에 소나무는 송홧가루를 날려 금빛 보료를

    까는데

    새집을 짓는다는 설렘은 어디 가고 나는

    누가 잠든 것 같아서

    누가 숨어서 부르는 것 같아서 자꾸만

    방바닥을 어루만진다

    평생 주인을 덥히며 보낸 폐가의 일생은

    불이었다

    나는 안방에 누워 그들의 온기를 느낀다

    코끝을 간질이는, 낯익은 엄마 냄새

    햇볕을 모아 따스함을 지피는 구들장

    그 열기로 앞뜰에 꽃이 피고 있다

     

    -2016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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