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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3. 5. 12. 20:42

     

    옛 냄새가 나지 않게 복원된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이다.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어서 그 규모와 격식이 웅장하고 화려하다. 또한 담장 끝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형식을 갖추고 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에 세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은 왕이, 좌우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한다. 문루(門樓)의 종은 때를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다른 궁의 문들은 낮은 단 위에 문을 세우지만 경복궁의 문은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을 내서 마치 성곽의 문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1395) 정도전이 정문(正門)으로 바꾸지만, 세종 8(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발췌, 광화문 추녀의 잡상은 7개.

     

    광화문 좌우에서 500년 왕조를 지켜온 해태상.

    해타(海駝)에서 변한 해태와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로 해석한 해치(獬豸)를 같은 말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고,

    요순시대에 탄생한 정의의 판관 해치(獬豸)는 사자머리에 뿔이 있으니 뿔이 없는 해태와는 다르다고도 한다.

    서울의 상징을 해치로 정하였으나 뿔이 없는 해태를 우리나라에 없는 해치라 하니 엉터리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철책으로 보호받고 있는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의 석계

     

    국보 223호인 근정전(勤政殿)법궁인 경복궁의 정전으로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가 진행된 곳으로 경복궁의 상징적 건물이다. 1395년(태조 4)에 지은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270여 년 만에 중건하였고 2003년에 보수하였다. 근정전 추녀의 잡상은 7개.

     

    비가 올만큼 와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근정전의 박석(薄石) 이야기는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적시되어 있다. 문화예술채널 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409@N2R:1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라는 말이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인데, .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백제본기에서 온조왕 15(BC 4) 지어진 궁궐의 자태에 대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조선의 궁궐에까지 이어진다.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궁궐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며,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방화수 역할을 했던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독'이다.

     

     

    가을의 드므 / 성선경

     

     

    반소매에 스친 바람 기운이 서늘하니

    기러기 그림자에 단풍이 더욱 붉고

    지난 무더위는 어떻게 잘 이겼는지

    구절초가 피자 소식 없는 친구가 그립다

     

    하늘이 높고 까치 소리 맑으니

    멀리 있는 자식이 더욱 보고파라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간장 한 종지

     

    해도 저물기 전에 서둘러 저녁을 마주하니

    백일홍은 백 일도 되기 전에 벌써 지고

    국화 분 유유히 저 혼자 향기로워

    숭늉 한 대접에 벌써 달이 뜬다

     

    쓸데없이 나이를 자꾸 먹으니

    반주 없이도 취기가 돌아

    내일은 꼭 한번 고향엘 다녀오리라

    섬섬히 궁핍한 마음을 내자,

    생각의 벽에 걸린 그림에 댓잎 소리가 쏴 하다.

     

    [네가 청동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파란, 2020.

     

    임금이 평상시 머무르며 정사를 돌보던 보물 1759호 사정전.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의 중심 건물로 좌우의 만춘전(萬春殿), 천추전(千秋殿)과 함께 편전을 이루고 있다. 원래 아침조회를 하는 곳이었는데 근정전에서 업무하지 않을 때나 추울 때 사용되었다. 사정전 추녀의 잡상은 7개.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 1395년(태조 4) 사정전 북쪽에 세워졌는데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뒤에 있던 왕비 침전인 교태전과 함께 지붕에 용마루를 양성하지 않음으로써 침전임을 상징했다. 1920년까지는 제자리에 있었으나 1917년 화재로 불타버린 창덕궁의 내전을 재건한다는 구실로 일본인들에 의해 헐리어 건축부재로 사용되었다. 강녕전 추녀의 잡상도 7개.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 다른이름으로 중궁전이라 한다. 1917, 창덕궁 대화재 이후 소실된 전각 복구를 빌미로 1918년 강녕전과 함께 해체되었다. 중국 자금성(紫禁城)에 있는 명, 청시대 황후의 침전 이름도 교태전이다. 추녀의 잡상은 7개.

     

    원기를 간직한다는 함원전(咸元殿)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서쪽, 흠경각 북쪽에 위치한다. 불상을 모셔두고 주로 불교의식과 행사를 열었으며 단종이 거처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정면 6칸, 단층의 팔작지붕이다. 추녀의 잡상은 5개.

     

    국가의 경사나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국보 224호 경회루는 연못 속에 지어졌다. 건축가는 천민 출신의 박자청(朴子靑, 1357-1423)으로 2품 판한성부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500여명이 동원되어 8개월만에 완공한 신비의 건축물이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유휴(遊休) 공간으로,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했던 누각이다. 지금 건물은 고종 때 다시 지은 것이다.

    세종 대의 문신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화산별곡에 "경회루와 광연루 높기도 높을사 넓으나 넓어 시원도 하다. 연기는 걷히고 맑은 기운 불어든다. 하늘 밖에 눈을 돌리니 강산풍월 경계도 천만 가지. 답답한 심회를 활짝 풀어준다. 올려 바라보는 경치 그 어떠한가. 봉래 방장 영주 삼신산 어느 시대에 찾아볼꼬."

    연산군은 경회루 연못 서쪽에 만세산을 만들고 산 위에 봉래궁과 일궁(日宮), 월궁(月宮)을 지어 놓고, 황룡주(黃龍舟)라는 배를 타고 풍류를 즐겼다. 경회루는 삼신선도이며 신선의 거처인 셈이다. 추녀의 잡상은 궁궐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다.

    덕수궁 http://ktk84378837.tistory.com/2462  경복궁 http://ktk84378837.tistory.com/4637

    광화문 http://ktk84378837.tistory.com/4638 대한문  http://ktk84378837.tistory.com/4953  숭례문 http://ktk84378837.tistory.com/3493

     

     

    광화문 / 서정주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光明)

    광화문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층(上下兩層)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르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

    아랫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太古) 같고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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