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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이 예로구나. peach풍경 landscape 2013. 5. 3. 20:49
내 왼쪽 겨드랑이에는 ㄱ 자 상처가 지금도 선명하다.
고모는 면내에서 가장 예쁜 처녀였다.
할아버지를 닮아 이목구비가 시원하고 명색이 부잣집 낭자라 군침을 흘리는 사내가 한둘이 아니었다.
가시나 가르쳐서 아무 쓰잘데 없다고 생각하던 할아버지는 딸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고모는 미모와 가정형편만큼 콧대가 높았다.
웬만한 동네 총각은 쳐다보도 못했다.
내 기억에 사각모를 쓴 대학생이 면에서 살았는데 방학 때면 찾아왔다.
어렴풋하지만 서울대 농대생이라 하였다.
고모는 그와의 데이트에 꼭 어린 내 손을 붙들고 다녔다.
내가 보호장치가 아니라 호랭이 별명을 가진 할아버지 눈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연애질 하는 꼬라지를 보면 맞아 죽는다고 알던 고모는그 대학생과 헤어지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쳐올라 공기총을 휴대하고 와 겁까지 주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에 마을 청년 중에 젤 똑똑하던 친구 중에 이장을 하던 친구에게 마음을 준 모양이다.
그가 지나가는 담 너머 길목을 지키다가 알려주는게 내 임무였다.
담장 안에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비를 맞고 잇었다.
하필이면 나는 그날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복숭아나무를 타고 올라가 걸터앉아 있다가 그가 나타나자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비맞은 복숭아나무 껍질은 미끄럼틀보다 미끄러웠다.
미끌어져 내리다가 중간에 잘려진 괭이에 그만 겨드랑이가 걸려 대롱대롱 걸렸다가 맨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겨드랑이를 보니 기름기 누런 기름덩이에 시커먼 나무껍질이 박힌채 너덜거렸다.
워낙 겁을 먹어선지 기름투성이라 그런지 아픔을 느끼지 못하였다.
주막에 전씨 성을 가진 의원이었는지 전의사라고 불렀다.
귀하디 귀한 어린 손자 다친 충격에 집안이 벌컥 뒤집히고 할아버지는 나를 등에 매달고 전의사집으로 내달렸다.
주사를 맞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숭숭 꿰매던 반달같은 바늘과 누리끼리한 지방덩어리는 생생하다.
그 이후로 고모와 그의 만남은 기억에서 멀어졌다.
고모는 엉뚱하게도 잘 나가는 회사의 과장과 결혼해서 떵떵거리며 사는가 싶었는데,
술에 쩔은 남편이 간경화로 불귀의 객이 되고선 정절을 지키며 삼남매를 키우는데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왼쪽 겨드랑 수술은 잘 되었으나 실밥을 늦게 풀었는지 마지막 자국은 가는 구멍이 뚫려 있어 때가 낀다.
복숭아나무를 보면 ㄱ자로 남은 왼쪽 겨드랑이 상처를 가끔 뒤져 본다.
연애하던 고모의 아름답던 청춘도 떠오른다.
돌아가신 할아버님도 그립다.
의평리.
복숭아나무 http://ktk84378837.tistory.com/4599 개복숭아 http://ktk84378837.tistory.com/5593
겹복숭아(만첩홍도) http://ktk84378837.tistory.com/5611 http://ktk84378837.tistory.com/5614 (만첩백도) http://ktk84378837.tistory.com/5614
복숭아 경전經傳 / 김완수
태초에 꽃이 있었나
휑뎅그렁하던 과수원에
한 우주가 화창하게 팽창하면
꽃들이 먼저 제자리를 찾는다
봄날의 과수원은 연분홍빛 우주
나무마다 생명체가 깃들고
다음 삶을 위해
꽃들이 기꺼이 몸을 던지면
열매들도 행성같이 들어앉는다
여름 한철 우주가 발그레해진다
행성들이 달콤한 지각 변동을 할 때
이따금 유성같이 떨어지는 비
행성과 유성의 사생아인 듯
단내는 신비롭게 우주를 떠돈다
표면에 땀방울이 송송 내돋는 것은
행성마다 태양 주위를 돈다는 증거
또 다음 삶을 위해
순순히 손 놓는 일 있을 때
단내도 따라 낙하지점을 찾는다
복숭아에 새겨진 말씀들을 읽는 시간
우주의 속살을 한입 깨물자
내 기다림이 감탄사로 풀이된다
-22 제14회 복숭아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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