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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사 무진기행-
    풍경 landscape 2011. 11. 13. 19:47


    오늘은 6일 일요일, 집 나온 김에 어쩝니까.우산을 받쳐들고 태고사 길을 올라가는 중입니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여름 장마보다 더 무섭습니다.경사가 워낙 심하다 보니 물줄기가 거세게 쏟아져 내립니다. 한여름철 소나기가 지나면서 급류에 휩쓸렸다는 말이 이제야 다가옵니다. 게다가 기온차 때문인지 갑자기 안개가 자욱해져서 스멀스멀 피부 깊숙이 스며듭니다. 태고사 가는 길이니만큼 태고(太古) 분위기가 물씬 나지 않습니까? 서어나무가 한 마리 짐승을 내려다 보며 어서 오라 손짓을 합니다. 이 분위기 때문에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르더군요. 1960년대 초의 불확실한 현실과 전망의 부재로 인한 젊은이들의 절망과 방황, 번민과 고독, 일탈과 욕망이런 것들이 '무진'이라는 배경을 만들어냈죠. '무진'은 작가의 성장지인 순천이라고 하니 딱 맞는 곳입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의미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존재론적 허무.거기서 힌트를 얻어 '도가니'의 무대를 '무진'으로 했다고 작가인 공지영이 밝혔지요. '무진'이 허구적 공간이지만 실제적 공간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죽은 것처럼 숨어 지내다가 어느날 불쑥 나타나는 시대의 불확실성 때문일까요. '무진'은 빛 광 자 고을 주 자 광주, 안개 속에 갇혀버린 광주란 말입니다. 그런데 약자의 성이 강자의 폭력에 의해 자행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도 책도 안개 속에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더란 말이죠. 유교적 이념으로는 논의할 가치마저 없다 하였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진부한 허구로 생각하였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더러운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아 두려웠을 수도 있겠고 내심 모르는 척 했을 수도 있겠고 여러가지 사유가 있었지요만 뒤늦게나마 사회적 이슈가 되어 개선되는 과정에 있으니 '무진'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는 존재일까요? 안개속 나무처럼 그냥 거기 그렇게 서 있기만 할까요?오늘은 집 나온 보람이 있습니다.

     

     

     

     

     

    한용운(韓龍雲)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태고사는 절 뒤에 의상봉·관음봉·문수대 등이 기묘하게 솟아 있고, 앞에는 오대산과 향로봉이 막고 있어 절경 속에 위치하고 있다.  금산 태고사.

    태고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25 https://ktk84378837.tistory.com/3206 

     


     

    안개  /  기형도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성역)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총신)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공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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