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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항소묘(北港素描)-
    풍경 landscape 2008. 12. 10. 16:36

    이 썰렁한 항구에 웬 호박엿장수?

    워낙 사람이 없으니 10분이나 있었나.

    엿장수는 찬바람을 헤치면서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사 하겠다고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바람 쐬러 나왔는가 보다.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역마살.

    김동리는 <역마>에서역마살을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다.

    역마살을 타고난 성기는 사랑하는 계연과 정착하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죽음과 유랑의 길 가운데유랑의 길을 선택한다.

    성기가 유랑을 택한 것은 현실적으로 운명에의 패배를 뜻하지만,

    그 내면에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담긴 극기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자연법칙과 인간의 생명이 하나의 원리에서 조화되는 세계를 그리는 김동리문학의 중요한 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아주머니에게도 이런 의지가 있는 것일까?

     

    멀리 대전에서 목포로 지음(知音)인 신상호와 이범조가 찾아왔다.

    장모님 장례식장에서 사위가 뭐 할 일 있나. 해서 가보고 싶다는 북항으로 안내를 했다. 뻘낙지를 먹고싶어 한다.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아저씨는 마리당 4천원씩 5마리를 2만원에 손질해 주었다.

    식당으로 가져가면 1인당 2천원의 추가요금이 붙지만

    여긴 식당이 아닌 어부의 집이라 이렇게 내놓을 수 밖에 없다며 겸연쩍어 한다.

    그 유명한 목포세발뻘낙지가 고소하기는 참기름 같은 것이, 입안에 쩍쩍 붙는 묘미까지 있다.

     

    세발낙지를 먹고 있는데 어디 식당아줌마가 와서 아귀를 손질해 달란다.

    손질해줄 의무까지는 없는데 아저씨는 동네 사람이 부탁을 하니 거절도 못하고 아귀의 큰 입을 쩌억 쪼갠다.

    안으로 굽은 이빨 때문에 먹다 목에 걸리면 손도 못쓰고 죽는단다.

    그래서 주둥이부터 잘라내는데 녹슨 칼은 소라도 잡을 지경이다.

    심해어일수록 미끈미끈해서 잡기도 힘든데 맨손이다.

    저러다 다치면 어쩔고 싶어 아, 목장갑좀 끼고 하세요 해도 들은둥만둥이다.

     

    목포.

    포구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두 노인네가 철푸덕 앉아 있다.

    엉덩이가 찰 법도 한데 맨바닥이다.

    그게 뭐 잡는그물입니까?

    민어 잡는 거요.

    민어는 고급어종인디 ..... 그게 잘 잡히나요?

    잡히기는 ..... 우리나라 어려운 경제만큼 잡히지 않으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없제.

    나는 순간 천승세의 <만선>에 나오는 곰치를 떠올린다.

    곰치와 구포댁 내외를 주요인물로 등장시켜 대자연과 싸워 나가는 어민들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어촌을 무대로 하여 자연과 대결하는 어민들의 강인한 의지와 비극적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곰치는 바다에 모든 의미를 둔 인물이다.

    여러 대를 바다에서 생활 근거를 마련하며 살아오면서, 근원적인 한(恨)을 쌓아 온 인물이다.

    가난에 찌들면서도 늘 만선에서 꿈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풍랑이 심한 날에도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하는 억센 사나이다.

    그러다가 아들도 바다에서 잃고, 아내까지 실성해 버린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바다에 도전한다.

    저 노인네들도 곰치같은 미련과 의지가 있을까.

    저 산의 뒤로 보이는 바위산은 유달산이다.

     

     

    북항 / 안도현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 이라 말했는데 너는 부강, 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본다, 北港, 처음에 나는 왠지 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맹서를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하기 좋은 북항,

    불 꺼진 삼십 촉 알전구처럼 어두운 북항,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탕아의 눈 밑의 그늘 같은 북항,

    겨울이 파도에 입을 대면 칼날처럼 얼음이 

    해변의 허리에 백여 빛날 것 같아서

    북항, 하면 아직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편이

    있을 것 같아서 나를 버린 것은 너였으나

    내가 울기 전에 나를 위해 뱃고동이 대신 울어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시집 북항’ /2012/ 문학동네

      올해로 등단 28년을 맞은 시인 안도현이 4년 만에 시 63편을 묶어 10번째 시집 북항’(문학동네)을 내놓았다. 그에게 이번 시집은 각별하다.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아왔던 안도현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그동안 드리웠던 대중적 시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강력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진성성이 스며든 작품을 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표제시 북항은 읽는 맛이 묘하다. 이 시에서 북항은 인천이나 목포처럼 실제 항구의 이름이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일단 한자 북()은 북쪽을 말하기도 하지만 달아난다, 패한다, 배신한다등의 뜻도 있다. 북항에는 북()의 이런 어지러운 마음이 다 들어 있다. 안도현 시인을 접할 때마다 느낀 것은 시인의 감성을 두고서라도 착한 눈과 마음이 참, 아름답다. 61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를 나와 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나온 잘 알려진 시인이다. / 박병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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