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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운주사(雲住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09. 1. 27. 12:46

    운주사(雲住寺) 노래를 불렀는데 이제사 운주사를 보니 기쁨이 두 배다.운주사를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은 운주사가 간직한 신비 때문이다.고려시대란 것 뿐이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창건되었는 지도 모르거니와 증명된 바 아무 것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좁다란 계곡에 세워진 참 보잘 것 없는 수건만한 절이다. 그러나 어느 절보다 신앙적이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신비한 고찰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비안개 아직 걷히지 않아서 그 이름처럼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더해 주고 있다. 좀더 이른 시간에 왔으면 하는 아쉬움까지 주었다. 맨처음 만난 것은 천불천탑의 명성답게 오른쪽 바위절벽 위에 버려진듯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문화재연구소 소속이라는 두 명의 여성 사진가가 이쪽 저쪽 가늠하며 사진을 담기에 옆에서 담고 보니 이름없는 5층석탑이다. 개울가의 넙적돌을 그냥 올려 놓은 것 같은 순수한 만큼 유치한 탑이다. 그 이름마저 정겨운 거지탑.

     

     원형 다층석탑과 석조불감.

    설명에 의하면,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 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 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조형면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모습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양식이라 하겠다. 기단의 맨윗돌이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탑신의 지붕돌은 정반대로 아래가 편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하려 한 의도로 추측된다.  석조불감(石造佛龕)은 보물 제797호로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한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 예이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 놓았다.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이처럼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유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등을 서로 맞댄 감실 안의 두 불상 역시 특이한 형식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은 우뚝 그 위용이 대단하다. 설명에 의하면 윗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다.탑신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다.운주사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다.

    각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 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다. 5층석탑이며 7층석탑이며 9층석탑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짝수는 음수이며 홀수는 양수이니 음양(陰陽)에서 오는 이치임이 분명하다. 음이 땅의 기운이라면 양은 해의 기운이다. 음의 기운이 넘치므로 양의 기운을 보하여 생명을 낳고 그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陰陽 사상은 우주와 생명의 원천을 설명하고 인간의 性命을 결정하는 논리다. 그렇다면 땅의 기운에 해의 기운을 적절하게 쏟아붓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해야 할 일 아닌가. 7층석탑과 8층석탑은 양의 기운을 최대한 받아 음의 기운이 충만한 이 세상의 평형을 찾고자 하는 염원이 아니었을까.

     

     영구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전경.

    ‘동국여지승람’ ‘능성현’ 조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고 전하는데 지금은석불 93기와 석탑 21기가 있다고 한다.불교미에 문외한인 범인이 보기에도 석불이나 석탑이나 예술성 높은 작품은 아닌 듯하다.단지 천년 세월의 고고함이 서려 있을 뿐 단순 소박미가 지배적이다.다른 고려시대의 사찰에 비해 누구의 표현인지 "유치찬란'이라 하였는데 민중 사찰이었다는 심증이 간다.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운주사, 가을비> 찬미시를 쓸 정도로 감동적인 사찰이다.운주사는 도선국사가 통일신라 51대 진성여왕 말엽에 창건하였다고 한다.우리나라를 그대로 두면 일본에 흘러갈 우려가 있다 하여 천불천탑을 세워 막았다고 하니 호국 불교로서의 의미가 크다 하겠다.신라도 고려도 호국불교라 하였다.운주사에 얽힌 신라적 이야기는 그 원류라 할 것이고,고려적 이야기는 학자들이 밝혀낸 근거 있는 이야기라 할 만하다.

     

    전설을 간직한 와형석조여래불은 시도유형문화재 제273호.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만들기로 하였다.천불천탑을 세우고 이제 마지막으로 와불을 세우려고 하는 찰나,밤세워 일하던 동자승이 지친 나머지 그만 새벽 닭이 울었다고 거짓을 고하였다.그래서 후대에 생긴 이야기가 있다.이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미륵세계가 온다는 미륵사상이다.부처의 열반상(옆으로 비스듬이 누운 상)과는 다르게 좌불과 입상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되어 있다.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크기. 나침반을 갖다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천 번째 와불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 좌불은 비로자나 부처님이고 옆에 입상은 석가모니불이다. 이 두 분을 지키는듯 아래 서 있는 노사나불(머슴부처, 시위불, 상좌불)도 있다.그러기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불 신앙의 형태로서 떼어서 어딘가에 세우려 했을까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역사의 기록에서 이런 대단위 불사가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북두칠성의 과학을 보여주는 칠성바위.이 칠성바위의 신비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가 보다.북두칠성이 지상에 내려와 누워 있는 배열 상태가 천문 지리적으로 일치한다고 한다. 즉 북두칠성 각 별의 밝기는 1,79(1등성), 2,37(2등성), 2.44(3등성) 순으로 나타난다. 칠성바위 각 돌의 지름도 각각 385, 291.5, 233.5cm로 그 비례가 일정하다고 한다. 그래서 원형 돌의 크기도 조금씩 다른 점은 별의 밝기의 차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사실이 그러하다면 놀라운 일이다.북두칠성에 관한 신앙은 중국의 도교사상이 불교와 융합되어 있다.칠성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하여 칠원성군 또는 칠성여래라고도 한다. 그래서 사찰에도 칠성각이 있으며 칠성의 주존으로 치성광여래를 모시고 협시불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배치된다.

    원시시대부터 북두칠성은 풍요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그 영혼이 돌아가는 별로 믿었다고 한다. 이는 자연 숭배사상에 기인한 일종의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고인돌 덮개돌이나, 고구려 장군총, 무용총 무덤안의 천상도 북쪽의 북두칠성이 그렇다. 2001년 KBS 역사스페셜에서 다룬 운주사의 신비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운주사 주변의 산은 온통 이 모양이다.2008년 4월 6일 일어난 산불로 5 헥타르 가량이 불탔다.불행 중의 다행이랄까 운주사는 무사했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초기 대응을 잘 했고 운이 좋았다 했지만 2004년 낙산사 화재 이후 주변 언덕 등에서 숲 가꾸기 사업을 벌여 과밀하게 심어진 나무들을 베어낸 것이 대형 화재로 이어지지 않은 요인이라고 밝힌 화순군청의 분석도 있었다.저 시커먼 맨땅에 새 살이 돋고 예전의 푸른 숲으로 자라려면 몇 년의 노력과 아픔이 지나가야 할 지...

     

    새로 지은 일주문의 앞면 현판은 영구산 운주사이며 후면에는 천불천탑 도량이다.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홍보대사이며 2008년 <황금물고기>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20년에 썼다는 시를 소개한다. 2001년에 방한했을 때 시란다. 한국외대 최미경 교수의 번역이다.

     

     

    운주사(雲住寺), 가을비  /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 단풍 속에 구름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눈으로 새는 밤동대문의 네온불이 숲의 잔가지들 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꾸실까?

    세상 끝의 바다 끝의 분단국 겁에 질려 분별을 잃은 듯한 나라

    무엇인가를 사고 팔고 점을 치고 밤거리를 쏘다닌다. 서울이 불밝힌 편주(片舟)처럼 떠다닐 때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청소부들은 거리의 널린 판지들을 거두고 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들이 손을 놓지 못한다.

    살며, 행동하며 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 번데기 익는 냄새 김치우동 미역국 고사리 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 에테르 맛이 난다.

    바라고 꿈을 꾸고 살며 글을 쓴다

    세상의 한끝에서 사막의 한끝에서 조명탄이 작열하며 갓 시작한 밤을 사른다.

    갈망하고 표류하고 앞지른다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숲의 부러진 나뭇가지들 처럼 나는 여기서 휘도는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속으로 회색의 아이들을 눕히는 바람에 대해 매운 사막의 관위로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서울-파리 2001년 10월 22일

     

    로아 ; 곧은 콧대에 반원형 눈썹을 가진 아프리카의 신으로 아이티를 거쳐 한국 불교의 평심 속에도 발견된다.

    *번역 :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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