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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은사지(感恩寺址) 3층석탑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0. 3. 2. 21:32

     

    감은사지는 그 유명한 문무왕 해중릉이 있는 감포 바닷가가 아련히 바라 보이는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용당산 자락의 높직한 언덕에 펼쳐진 옛 절터이다.

    흔히 감은사는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제 아버지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로 알려져 있으나 절을 착공한 것은 문무왕 자신이었다. 삼국통일의 위업은 이루었지만, 나라 땅 곳곳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섬멸하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죽어서도 용(龍)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킬 것을 서원하고 그 원을 이루기 위한 원찰(願刹)로 감은사를 착공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감은사는 ‘왜병을 진압하고자 (欲鎭倭兵)’하는 문무왕의 염원을 담아 지은 호국의 거찰인 셈이다.

    현재 이 절은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우람한 3층 탑 2기만 남고 나머지 전각은 모두 소실된 절터로만 남아있다. 주춧돌만 남아있는 건물지 등으로 유추해 볼 때 감은사는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두개의 탑과 법당, 강당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이른바 ‘남북선상의 쌍탑식 가람배치’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양식은 법당 앞에 한기의 탑을 두는 ‘일탑식 가람배치’ 양식에 이어 나타난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가람배치 양식이다.

    다만 죽어서 용이 되었을 문무왕을 기리는 의미에서 독특한 시설을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법당 밑으로 구멍을 내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해그 물을 따라 용이 들어와 노닐도록 했다는 것이다. 법당에 용이 들어왔으니 법당을 용당(龍堂)이라 했을 것이고 그 흔적은 ‘용당산’(龍堂山) ‘용당리’(龍堂里)와 같은 지명의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이 감은사지에서 가장 분명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허허로운 절터에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2기의 삼층탑이다. 날카로운 철제 刹柱를 곧추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 웅장한 탑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불탑의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금쪽같은 유적이다. 목탑의 양식과 전탑의 양식을 혼합하며 부단히 시험을 거듭하던 신라의 장인들은 마침내 통일의 영주 문무왕의 원찰에 세워질 탑에서 화강암이라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재료로 새로운 탑의 형태와 양식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2층의 높직한 기단 위에 목조탑의 기둥을 축약한 것으로 보이는 우주(隅柱)와 탱주(撐柱)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는 탑신(塔身), 기와지붕의 모서리를 연상케 하는 옥개(屋蓋)의 우아한 반전, 5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옥개받침 등 신라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무왕은 감은사를 세우면서 호국의 염원을 담고 있는 거찰답게, 요즘으로 치면 ‘신공법’을 사용한 새로운 형식의 탑을 유례없이 우람하고 당당한 규모로 세웠던 것이다. <약국신문> 2007년 8월 27일 字 http://blog.naver.com/jsyou3?Redirect=Log&logNo=120043236964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문화재청

    감은사지 http://ktk84378837.tistory.com/642 http://ktk84378837.tistory.com/1684 대왕암 http://ktk84378837.tistory.com/1683 


     

    감은사 1235년전홍준

     

     

    서라벌의 속곳을 쑥밭으로 만든

    몽고의 병사들은 절에

    불을 지른다

     

    저녁 어스름 맹렬한 연기가

    대종 천을 휘감을 때

    산기슭에 숨어있던 백성들의 눈빛이

    화살 맞은 짐승을 닮아간다

    실성기 들린 마음에도

    불이 일렁거린다

     

    훨훨 불타라!

    포석정에서 술잔 돌리던

    그들만의 이데올로기여

     

    금관의 나라 신라는

    숨이 컥 넘어간다.

     

    수록시집 마당을 쓸면서 ( 도서출판 전망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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