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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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wait -심상 image 2010. 11. 11. 21:04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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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山城)의 나무기타 etcetera 2009. 12. 23. 21:36
보문산성.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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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痕跡) 2심상 image 2008. 5. 22. 15:34
흔적Ⅲ·1980(5.18×5.27㎝) 李暎浩作 / 황지우 그 길은 모든 시간을 길이로 나타낼 수 있다는 듯이 直線이다. 그리고 그 길은, 그 길이 마지막 가두 방송마저 끊긴 그 막막한 심야라는 듯이, 칠흑의 아스팔트다. 아, 그 길은 숨죽인 침묵으로 등화 관제한 第一番街의, 혹은 이미 마음은 죽고 아직 몸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낮게낮게 엎드려 발자국 소리를 듣던 바로 그 밑바닥이었다는 듯이, 혹은 그 身熱과 오열의 밑 모를 심연이라는 듯이, 목숨의 횡경막을 표시하는 黃色線이 중앙으로 나 있다. 바로 그 황색선 옆 백색 ↑표 위에 백색 ×표가 그어져 있고 횡단 보도에는 信號燈이 산산조각 되어 흩어져 있다. 그 신호등에서 그 백색 ×표까지, 혹은 그 백색 ×표 위까지, 혹은 캔버스 밖 백색 벽 위에까지, 火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