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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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희(金益熙) 묘소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8. 18. 10:43
대전기념물 제5호. 유성구 가정동 대전교육과학연구원 뒤 야산에 있다. 김익희(金益熙)의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며 할아버지가 사계 김장생(金長生)이다. 유복자인 서포(西浦) 김만중의 작은아버지에 해당하며 병자호란 때 척화론자였다. 신도비각. 우암 송시열이 찬한 신도비. 재실 긍사재 전경. 솟을대문 너머로 보이는 재실. 대전교육과학연구원 옥상에서 본 모습. 재실 옆에 있는 김익희의 묘. 대전기념물 제5호 김익희 묘소 http://ktk84378837.tistory.com/6768 대전기념물 제10호 보문산성 http://ktk84378837.tistory.com/3567 http://ktk84378837.tistory.com/5488 대전문화재자료 제7호 김반 김익겸묘소 http://ktk84378837.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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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문학비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15. 6. 5. 21:31
장숙의(장희빈) 일가를 둘러싼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평안도 선천으로 유배를 갔다가 1688년, 숙종14년에 풀려난다. 그러나 장씨의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 하는 것에 반대한 서인은 이른바 기사사화를 당하며 김만중 역시 다시 탄핵을 받는다. 숙종15년(1689년) 53세의 나이에 남해 노도로 유배되어 '가극안치'(加棘安置:가시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는 형벌)된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불후의 명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의 한글소설과 많은 한시를 쓴다. ‘사친(思親)’은 유배 중이던 1689년 9월 25일 모친의 생일에 쓴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된 김만중문학비가 있는 전민동의 야산은 광산김씨 종산으로 위는 아버지 김익겸의 묘이고, 아래는 할아버지 김반의 묘이다. 윗사람이 아래로 가고 아랫사람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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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 김씨 시비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12. 12. 28. 18:18
2009년 9월 11일 촬영 동춘당 공원 내. 호연재 안동김씨는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며느리이다. 호연재 김씨, 조선후기 여류시인 김옥균 5대조 김시윤 청산현감 여동생 - 옥천향수신문 (okhsnews.com)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 신사임당에 이은 조선의 5대 여류시인이라는 ... 김만중 http://ktk84378837.tistory.com/4465 부용 묘 http://ktk84378837.tistory.com/4249 매월당부도(백련사) http://ktk84378837.tistory.com/3207 김시습 영정(무량사) http://ktk84378837.tistory.com/4451 안축 http://ktk84378837.tistory.com/399 양산가비 http://ktk8437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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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의 동춘당은 보수중이라...종가풍경 landscape 2012. 12. 8. 21:23
송준길의 종가가 있는 곳은 행정지명도 송촌동이요, 주변아파트 단지도 ‘선비마을’이다. 종손이 기거하는 곳으로서 사대부가의 상징이랄 수 있는 정침, 사랑채, 가묘, 별묘 등을 온전하게 갖춘 종택은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송준길의 호 동춘당은 별당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송준길과 송시열은 먼 숙질간으로 한집안인 데다 두 사람의 할머니가 자매간으로 외척이었다. 그러다 보니 송시열이 어려서부터 이곳에 와 송준길과 동문수학하며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예학(禮學)을 계승하게 되었는데 둘의 성격은 너무나도 달랐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른 인물로서 조선 후기 모든 논쟁의 진원지였으며 사후에도 공과(攻過)가 거론될 만큼 ‘화약고’였던 데 반해, 송준길은 그의 호 동춘당(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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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의 동춘당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1. 12. 14. 19:53
동춘당(同春堂)은 송준길의 부친인 송이창이 세웠으나 송준길(1606~1672)이 40세 되던 해에 중건한 별당 건물. 동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 모양의 평면으로 된 단층팔작지붕이며, 앞면을 널찍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주두 없이 직접 굴도리를 받친, 민도리집 양식이다. 대청과 온돌이 접합되었으며 고상식(高床式)으로 꾸몄음에도 적절한 비례감을 확보하였고 처마에 날아갈 듯한 유려한 지붕곡선이 특징이다. 건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별당건축물로 규모도 크지 않고 송준길의 선비 기질을 잘 나타낸 간소한 건물이다. 현재 보물 제209호. 현판은 송준길 사후 우암 송시열이의 쓰고 인(仁, 春)을 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함. 포저(浦渚) 조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