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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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지나 강진 백련사(白蓮社)문화 culture 2022. 7. 1. 11:56
성균관진사 윤종진의 묘, 다산의 가장 어린 제자로 다산의 뜻을 따라 다산초당을 지켰다. 겨울방학 때 아이들을 들쳐업고 와서 초당과 울창한 가운데 빨간 동백숲의 가물가물한 기억을 30여년 만에 접할 기회가 찾아왔다.정약용은 1808년봄 해남윤씨 집안의 산정(尹博의 山亭)에 놀러갔다. 아늑하고 조용하며 경치가 아름다운 다사서옥(茶山書屋)은 지난 7년간 전전하던 주막이나 제자의 집에 비할 바가 이니었다. 더구나 가까운 백련사(白蓮寺)에 절친한 벗 혜장(惠藏)이 있었고 다산(多山)은 그 이름처럼 차나무로 가득했다.정약용은 시를 지어 머물고싶은 마음을 전했고 윤씨집안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비로소 안정을 찾고 후진 양성과 저술활동에 몰두했다. 10년동안 다산학단(多山學團)으로 일컬어지는 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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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에서 신선이 된 김시습(金時習)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3. 1. 2. 18:37
자화상으로 남아 있는 김시습 영정 김시습의 영정이 안치된 사당 10대에 학업에 전념하고, 20대에 자연을 벗삼아 전국을 떠돌다가, 30대에 고독한 영혼을 정사수도(靜思修道)하더니, 40대에 현실 비판과 저항의 세월을 보내고, 50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는 무량사에 와서 묶다가 병사하였다. 그의 시신은 다비하여 부도로 남았다. 시비가 입구에 세워져 있다. 2011년 5월 5일 만난 무량사의 전경. 그의 묘와 시비가 근처에 있다. 무량사 일주문. 김시습을 알게된 경위는 교과서에 수록된 그의 작품을 가르치면서였다. 최초의 소설이라 평가받는 『금오신화』는 신화가 아닌 신화인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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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백련사 초파일의 추억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08. 5. 13. 13:32
백련사. 수양이 부족하니 누워 침 뱉는 얘기나 하나 하자. 세상에 전라도 음식 치고 이렇게 싱겁기 짝없고 나물이냐고 다섯가지 밖에 들어가지 않은 절밥 한 그릇 얻어 먹고 우리 사랑스런 마나님 설거지 공양까지 하고 내려왔는데, 세상에 내가 잘못하고도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태고사 가자는 아내 말을 들었어야지 후회해도 소용없구나. 사연인즉슨, 괜스레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도 자기 가고싶은 데로 가라는 말에 이름도 예쁜 백련사를 가겠다고 먼길 나섰겠다. 국립공원 입장료 불필요하다고 여론에 떠밀려 없앤 지가 얼마나 되나. 그거 손해 볼 사람 누가 있을까마는 당장 주차비를 올리고 입장료 올린 일이 엊그제다. 올핸 주차비를 천 원 인상해서 5천원을 받는데 1차 억울한 마음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입장료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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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백련사에 매월당 부도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08. 5. 13. 13:26
무주 백련사. 무주 백련사 일주문 안쪽에 매월당 부도(梅月堂 浮屠)(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가 있어 김시습의 것인줄 알았는데 1784년에 세워진 매월당 설흔(梅月堂雪欣) 스님의 부도이다. 호가 같아 생긴 큰일날뻔한 오해였다. 전체 높이가 190cm로 둥근 대석 위에 탑신(塔身)이 석종형(石鐘形)으로 올렸다. 대석에는 복련(覆蓮)을 새겨 놓았고, 탑신의 상륜부(相輪部)는 보륜(寶輪)을 조각한 뒤 그 위에 유두형 보주(寶珠)를 조각했다. 보륜을 중심으로 한 탑신의 윗면과 보주 위에는 화려한 복련과 앙련(仰蓮)이 조식되어 있다. 탑신에는 '매월당설흔탑(梅月堂雪欣塔)'이라는 탑명과 함께 매월당 설흔의 부도를 생질인 임선행이 세웠다는 '건륭갑진삼월생질임선행건립(乾隆甲辰三月甥姪朴善行建立)' 이라는 명문이 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