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고택
-
명재고택 윤증고택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2. 6. 24. 11:44
명재 윤증고택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노성면 교촌리 306) 사랑채 누마루에 걸린 편액은 離隱時舍(이은시사)인데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윤완식(12대 차종손)은 속세를 떠나 은거하면서 나아갈 때를 아는 집이라 하였고, 김경란(문화해설사)은 세속을 떠나 은둔하며 천시를 연구하는 집이라 하며, 김경민(서경대교수)은 세상과 떨어져 숨어살던 때의 집이라 하였다. 박태근(https://blog.naver.com/cakemart/222298541419) 그런데 편액을 단 사람은 이은(離隱) 윤하중(尹昰重, 9세손)이며, 그는 일제강점기 인물이므로 세상과 떨어져 숨어살던 때의 집이 어울리는 해석이고, 도원인가(挑園人家)는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의 집을 뜻한다. 따라서 이은시사=도원인가 느티나무 보호수, 정자목,..
-
논산 명재고택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4. 12. 11. 08:48
윤증(尹拯) 1629년(인조 7)~ 1714년(숙종 40)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 유봉(酉峰). 29세 때에는 김집의 권유로 송시열(宋時烈) 문하에서 예론(禮論)을 배웠다. 1663년(현종 4)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숙종대에도 호조참의, 대사헌,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판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1680년(숙종6) 김수항(金壽恒), 민정중(閔鼎重) 등이 경연에 나오도록 청하고, 박세채(朴世采), 조지겸(趙持謙) 등이 거듭 출사를 권했으나 사양했다. 그는 송시열, 김석주(金錫胄), 김만기(金萬基), 민정중의 세도가 바뀌어야 하고, 서인과 남인의 원한이 풀어져야만 출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일로 최신(崔愼)이 스승인 송시열을 배반했다고 ..
-
뒤웅박 장독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12. 6. 4. 22:53
1,700여개의 장독이 진열된 연기군 전동면 청송리의 뒤웅박고을. 윤증고택 http://ktk84378837.tistory.com/976 http://ktk84378837.tistory.com/6243 독 / 장만호 금간 독 속으로 저녁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누군가 밤에 길어다 부은 물이 긴 여름 장맛비가 장맛처럼 짜디짠 한 여자의 일생이 저 속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왔을 것이나, 나는 속을 모르고 나는 어떤 저녁인가 어떤 빛으로 물들어가는 어둠인가 내안의 부재를 들여다보는 일은 많은데 오랫동안 부글거렸거나 얼고 녹았을 내장의 시간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후 수면 내시경을 받고서는 주름진 내장의 굴곡을 다른 꿈속인 듯 바라보는 늙은 어머니처럼 그걸 지켜보며 슬퍼서 슬퍼서 심장이 된 어느 아들처럼 독은, 가만히 가..
-
논산 명재고택(明齋古宅)-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0. 10. 25. 17:20
윤증 [尹拯, 1629~1714]은 호를 명재(明齋)·유봉(酉峰)이라 한다. 디지탈논산문화대전 http://nonsan.grandculture.net/Contents/Index에 소개된 윤증은 이런 사람이다. [활동사항] 효종(孝宗)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다. 1663년(현종 4) 35세에 내시교관에 제수되었다.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잇달아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숙종(肅宗) 때는별유(別諭: 임금이 내린 특별한 유지)를 내려 부르기도 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1682년 호조참의, 1684년 대사헌, 1695년 우참찬, 1701년 좌찬성, 1709년 우의정, 1711년 판돈녕부사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나가지 않았다. 그의 주목받는 활동은 예송 논쟁 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