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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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목 板木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3. 8. 9. 21:15
상제집략 판목(喪祭輯略 板木) 유형문화재21호. 벼슬 않고 오직 성리학과 문학에만 전념한 무와(無窩) 권순경(權舜經, 1676-1744)의 글을 새긴 판목으로 모두 66판 132으로 이루어졌다. 총4권으로 1-3권은 상례, 4권은 제례로 사계 김장생이 펴낸 상례비요와 함께 우리나라 전통 상제례에 관한 사항을 계통적으로 정리해 연구의 중요한 자료다. 판목의 본체는 배나무, 마구리는 소나무로 되어 있다. 선사박물관 보존되어 있다. 서구 흑석동산97 용천연고 판목(龍川聯稿 板木) 유형문화재22호. 용천연고는 권순경(權舜經, 1676-1744)이 저술한 권1무와고(無窩稿), 동생 권순기(權舜紀)가 지은 권2 약계교(藥溪稿), 차남 권흡)權熻)의 글을 모은 권3오헌고(捂軒稿) 등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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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종학당(宗學堂)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2. 6. 24. 12:01
종학당(宗學堂), 논산시 노성면 종학길 39-6 (노성면 병사리 95-1). 1625년 인평대군의 스승이었던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 1596~1668)가 자녀교육을 위해 세웠다. 그는 돈암서원에 배향된 기호학파의 거두 김장생(金長生)의 제자이기도 하다. 백록당 정수루 종학당 보인당을 합쳐 종학원이라 한다. 파평윤씨 문중의 교육기관으로 윤석열대통령 당선축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파평은 오늘날 파주의 옛지명이다. 보인당 원래 노성면 두사리 물레고개에 본당과 동서재를 갖춰 학문을 연구하고 운영하던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정수루,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보는 느낌이 살짝 왔다. 앞건물이 정수루, 뒷건물이 백록당이다. 오가백록(吾家白鹿, 주자가 살던 지명으로 윤씨문중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백록처럼 고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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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흥암서원(興巖書院)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1. 15. 17:12
흥암서원(興巖書院) 현액 진수당에 이양례 수필가(좌)와 강형일 시인(중)과 백제문화원 부원장(우)이 포즈를 취했다. 흥암서원 진수당(進修堂), 진수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를 개최하거나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흥암서원(興巖書院), 충청인으로 김장생의 문하이며 노론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 한 사람을 배향한 것은 지방유림의 공의였다하나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연유를 살펴보건대 당파를 떠나 동인인 정경세가 서인인 김장생과는 친분이 있었는데 그를 만나러 왔을때 막내딸 신랑감 추천을 부탁하였다. 김장생은 제자인 송시열, 이유태, 송준길을 소개하였고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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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儒生)의 하루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0. 18. 16:46
백제문화원(사)이 주관하는 "유생의 하루"에 희망을 주는 새벽놀. 해설은 역시 허심당(虛心堂) 세계문화유산으로 승격된 돈암서원(遯岩書院) -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배향했다. 장엄한 응도당(凝道堂)의 위용. 보물 제1569호. 처음 맞딱뜨린 장판각 소쇄작업 장면 숭례사 담장의 전서 瑞日和風(서일화풍, 좋은 날씨 부드러운 바람처럼 남을 대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 지식은 넓게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地負海涵(지부해함, 땅이 실어주듯 바다가 받아주듯 모든 것을 포용하라)에 비쳐진 사계 김장생의 사상철학. 의성김예산(義城金禮山)이 8세때 썼다는 정회당(靜會堂, 낙관에 義城金禮山九歲敬書)과 9세때 썼다는 전주 한벽당(寒碧堂, 낙관에 義城金禮山九歲謹書) 현액. 한벽당 사진은 빌려옴. 부안 개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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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갈산서원 葛山書院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7. 3. 13. 18:19
초려역사공원.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1607~1684)의 묘역과 그를 배향한 서원을 공원으로 삼았다. 초려 이유태는 김장생(金長生)·김집 부자에 사사하였으며, 그 문하인 송시열·송준길·윤선거(尹宣擧)·유계(兪棨)와 더불어 호서산림 오현(五賢)이라 한다. 기헤봉사개요도. 기해봉사는 효종의 북벌대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해년(1659년)에 초려 이유태가 작성한 4만여자에 이르는 대상소문이다. 풍속을 바르게 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낡은 폐단을 혁파하는 국정개혁의 3대강령을 주창하였으나 효종이 죽고 현종 이후 국론이 분열되면서 실행하지 못하였다. 갈산서원(葛山書院). 초려 이유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94년(숙종20년)에 갈산(현 종촌)에 세웠으나 소실되고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복원하였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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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희(金益熙) 묘소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8. 18. 10:43
대전기념물 제5호. 유성구 가정동 대전교육과학연구원 뒤 야산에 있다. 김익희(金益熙)의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며 할아버지가 사계 김장생(金長生)이다. 유복자인 서포(西浦) 김만중의 작은아버지에 해당하며 병자호란 때 척화론자였다. 신도비각. 우암 송시열이 찬한 신도비. 재실 긍사재 전경. 솟을대문 너머로 보이는 재실. 대전교육과학연구원 옥상에서 본 모습. 재실 옆에 있는 김익희의 묘. 대전기념물 제5호 김익희 묘소 http://ktk84378837.tistory.com/6768 대전기념물 제10호 보문산성 http://ktk84378837.tistory.com/3567 http://ktk84378837.tistory.com/5488 대전문화재자료 제7호 김반 김익겸묘소 http://ktk84378837.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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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문학비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15. 6. 5. 21:31
장숙의(장희빈) 일가를 둘러싼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평안도 선천으로 유배를 갔다가 1688년, 숙종14년에 풀려난다. 그러나 장씨의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 하는 것에 반대한 서인은 이른바 기사사화를 당하며 김만중 역시 다시 탄핵을 받는다. 숙종15년(1689년) 53세의 나이에 남해 노도로 유배되어 '가극안치'(加棘安置:가시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는 형벌)된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불후의 명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의 한글소설과 많은 한시를 쓴다. ‘사친(思親)’은 유배 중이던 1689년 9월 25일 모친의 생일에 쓴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된 김만중문학비가 있는 전민동의 야산은 광산김씨 종산으로 위는 아버지 김익겸의 묘이고, 아래는 할아버지 김반의 묘이다. 윗사람이 아래로 가고 아랫사람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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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의 새재 시비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13. 2. 1. 21:26
새재, 2010년 9월 25일 촬영 사계 김장생의 증손인 김만중.장숙의(張淑儀)일가를 둘러싼 소위 언사(言事)의 죄로 첫 유배인 선천으로 가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슬픔을 머금은 채 어머님과 이별하고 손을 들어 친척들과 헤어졌네 가을날 서성길에 관하에 홀로 가는 사람이라네또 망발인 줄 분명히 알지만 어떻게 깊은 은혜 갚을 수 있나 그래도 구구한 뜻이 있지만 이제부터 피지 못할까 두렵네." 김만중은 조사석 사건으로 함경도 극변으로 두번째 귀양을 간다.세번째 인현왕후 민씨 폐출사건 여화(餘禍)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병사하였다. 문경 새재에 세운 은 남해 노도로 귀양을 가면서 지은 시로 보인다. 남해를 돌다가 노도 앞을 지나다 보면 언뜻 김만중 유배지 팻말이 스친다. 노도에 유배를 왔다가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