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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이순신순국공원과 충렬사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1. 9. 17. 22:18

    이충무공전몰유허비

     

    이충무공사당

     

    관음포

     

    냄새가 고약하기로 소문난 계요등

     

    노량대교는 학익진을 재현한다는 설명이 있다.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으로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싸움이다. 
    1597년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한 일본은 11월 왜장 고니시 등이 이끄는 500여 척의 왜선이 노량수로와 왜교 등지에서 공격해 왔다. 200여 척의 배밖에 보유하지 못했던 이 전투에서 200여 척의 일본수군이 격파되고 패잔선 50여 척만이 관음포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순신은 도주하는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격파하여 포위되었던 명의 장수인 진린을 구하고 적을 추격하다가 왜적의 흉탄에 맞고 쓰러졌다. 이순신의 유언으로 그의 죽음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야 알려졌다. 노량해전의 승리는 정유재란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해 충렬사 사적233호. 코로나19 방역차원에서 출입이 폐쇄되어 입장을 못하였다.

    이통제 충렬사[李統制忠烈祠]  / 김만중(金萬重 16371692)

    統制領戈舡 통제사께서 병선을 지휘 하시니

    偏師鏖強敵 군사들도 굳센 적을 무찔렀지

    信義擾漢將 신의로운 자세는 중국의 장수를 흔들리게 했고

    威聲慴關白 위세와 명성은 관백을 두렵게 했네.

    妖氛已褰豁 요사스런 기운이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더니

    大星俄芒赤 큰 별은 어느새 흐릿하고 붉게 변했네

    共嗟諸葛忠 모두 제갈공명의 충성심을 감탄했지만

    而無汾陽福 팔자 좋은 곽분양이 누렸던 복은 없었지

    功名古難居 공명의 위치는 참으로 머물기 어려우니

    臣子甘殉國 신하는 나라 위해 죽는 일을 달게 여겼네

    蕩蕩露梁口 넓고도 넓구나 노량의 바다여~

    風濤成霹靂 바람과 파도도 거센데 벼락마저 몰아치네

    魚龍畏簡書 어룡도 문서나 편지를 전하기 두려워하고

    蛇鳥留陣磧 뱀과 새조차 머물면서 서덜에 진을 쳤네

    廟宇從民望 묘우(廟宇)는 백성의 희망을 쫓았고

    香祝降毅魄 향축은 굳센 혼백에게 내렸지

    靈風翼兩旗 신령한 바람에 두 깃발이 펄럭이고

    簫鼓喧阡陌 피리와 북소리는 논밭에서 떠들썩했다지

    似聞鐵馬聲 철마의 내달리는 소리 들릴듯한데

    往往陰雨夕 때때로 음산한 비가 저녁 무렵에 내리네.

    淸時澤畔纍 맑을 때에도 해안가에 갇혀 있었으니

    日星礙叢棘 해와 별도 가시덤불에 막혀 있었지

    跬步阻趨蹌 느릿느릿 걸으면서 추창(趨蹌)을 막았고

    九歌聲轉激 옛 노랫소리 울려 더욱 격렬하구나.

    片石星斗文 조각돌에는 북두성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想見苔蘇蝕 이끼나 차조가가 파먹었나 여겼다지

    拳然生楚愴 주먹을 불끈 쥐니 슬픈 마음이 우러나

    不待拭遺墨 남은 글씨를 문득 어루만진다.

     

    척화비(斥和碑)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66호. 1866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은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며 쇄국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였다. 그 뒤 1871년 미국이 조선을 침략한 신미양요가 일어나고, 미군이 강화도에서 조선군과 싸운 뒤 4월 25일 퇴각하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쇄국 의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삼도통제사 이태상비(嘉善大夫三道統制使李泰祥李泰祥碑). 이태상은 1757년 12대 통제사이며 이순신의 5대손이다. 수군통제사는 조선시대 충청도·전라도·경상도 3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었으며 총208명에 달하고 1,3대가 이순신장군이었다. 원래는 각도의 수군절도사가 수군을 지휘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의 지휘계통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것이 시초였다. 

     

    자암 김구선생(화전별곡 작) 적려유허비. 

    자암 김구선생(조선 중종때 기묘사화로 남해유배시 6장의 경기체가 화전별곡-1장은 화전의 경치, 2장은 교우(交友), 3장은 연락(宴樂), 4장은 연락 중의 음악, 5장은 술과 안주의 풍부함, 6장은 자신의 생애를 읊고 있는데, 마지막 6장은 앞의 장들과 달리 가사체(歌辭體)의 느낌을 주는 전체의 결락구(結落句)). 자암은 조선4대 명필이라 하는데 인수방에 살아 그의 필체를 인수체라 한다. 기묘사화 때 개령으로 유배되었다가 화전(남해)으로 이배시 경기체가(景幾體歌) 화전별곡(花田別曲)을 지었다. 화전별곡 https://ktk84378837.tistory.com/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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