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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五里霧中) fog -풍경 landscape 2010. 11. 22. 10:26
추소리.
대동리.
안개 속의 풍경 / 나희덕
우리는 낙엽처럼 떠돌고 있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러나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서,
세상은 우리의 무임승차를 허락하지 않아요.
바람과 안개만이 우리를 데려다줘요.
오늘은 눈까지 내렸어요.
죽어가던 흰 말은 눈 위에서 죽어버렸고
저녁은 그만큼 더 어두워졌지요.
우리는 낙엽처럼 서로 몸을 포개고 잠이 들어요.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지만,
아버지는 인화될 수 없는 필름 속에만 있어요.
안개 속의 나무 한 그루처럼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듯한, 그러나
그 나무는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 걸어요.
안개가 우리를 완전히 지워줄 때까지.
처음 사랑에 눈을 뜬 것도
안개 속에서였지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어요
아버지, 얼마나,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우리는 낙엽처럼 떠돌고 있어요.
나무의 일부였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호루라기 소리와 억센 팔들을 피해,
초소의 불빛과 총소리를 피해,
우리는 안개의 일부가 되어야 했어요.
이제 우리는 강을 건너요.
한 조각 배를 타고
그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인 줄도 모른 채.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 왔어요.
문학사상 200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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