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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산 백일헌 종택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9. 11. 18. 11:42

    백일헌(白日軒) 이삼장군(李森將軍)의 고택이다.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7호. 신원사 탐방 전후로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인근 노성면의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제자인 이삼 장군은 1705년(숙종 31) 무과에 급제, 정주목사를 거쳐 평안도,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이후에도 포도대장, 어영대장, 한성판윤, 공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내고 함은군(咸恩君)에 봉해졌다. 이 가옥은 1727년 훈련대장이 되어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하사받은 것이다. 후손이 살고 있어 안채 출입은 양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밖에서 어물거리다 나온다. 안내판을 보면 ㄷ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사랑채가 천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중앙에 3칸통칸의 대청이 있고 좌측에는 안방과 윗방, 우측에는 건넌방을 둔 팔작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간결한 민도리집 구조이며, 부연없는 홑처마 지붕이다.

     

    장승은 경계표시나 이정표 또는 수호신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해 온 민속신앙의 조형물이다. 그 기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의 역사를 지니며 변화하고 전승되어 온 것이다

    장승의 기원은 솟대·선돌·신목(神木) 등과 함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물로서 유목·농경 문화의 소산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수호신상으로서 씨족·부족민의 공통적 염원을 담은 제정일치 시기 지배이념의 표상으로서 기능하다가 삼국 시대 들어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이 마련되고 불교·도교·유교 등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됨에 따라 불교에 습합되어 전승하게 된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승은 민간신앙의 저변으로 흘러 들었을 뿐 불교라는 제도권에 안착되지는 않았다. 불교는 장승의 의미를 약화시켜 사찰의 경계표지나 호법신(護法神)으로 축소시킨다. 외래신앙이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전래의 민속신앙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처럼 불교와 무관한 장승이 사찰에 등장한 것이다. 이는 장승이 민중의 삶과 정서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반증해 준다.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사회의 통치이념인 유교가 현세적 도덕규범의 성격이 강함에 따라 생산, 죽음이나 질병, 고통 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장승신앙이 부활할 소지가 생겨난다. 궁중에서도 일정하게 역할을 한 무속적인 금장군(金將軍갑장군(甲將軍)이라 불리는 세화(歲畵)의 등장이나 용호(龍虎) 그림 등의 유행도 그 기운을 읽게 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이는 지배층문화에서 소외된 불교·도교가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신석기 이래의 민속적 장승신앙이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그 이름이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방어대장군·진서대장군·상원주장군·하원당장군 등으로 붙여진 것이다. 이처럼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면면히 이어온 장승은 16~17세기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한 장승은 크게 마을장승과 사찰장승으로 구분된다.

    마을장승들은 대개 농업생산력이 발달한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선돌이나 좆바위(남근석)와 같은 성신앙적 조형물과 함께 발전한다. 그 예로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1689년 작 부안의 서문안 당산과 동문안 당산을 들 수 있다. 선돌과 돌솟대에 새겨진 시주자 명단을 통해 가선대부 김성립(金成立)’ 등 양반지주는 물론 조갑신(曺甲申) 등 서민층까지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드넓은 김제·금구평야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경제적인 변화과정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부민(富民) 층의 활약, 민중의식의 성장과 관련되어 등장한 것이다. 운봉 김영세 (daum.net)

    종택이 있는 상월면 주곡리 술골은 여자도서와 지명총람에 전공주도에 속한 니산현 하도면 주곡리의 장승백이로 기록되어 있다. 역참제도때 주곡리 장승백이는 큰길(역도)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기능의 장승(長生)이 세워져 있던 곳이다. 1895년 역참제도가 폐지되면서 장승백이가 술골의 당산(서낭당)으로 변화가 되어 절충된 것으로 추정된다(황준구)

     

    용머리를 조각하고 칼날의 모양이 초승달을 닮은 언월도(偃月刀)는 무예시범이나 훈련에서 사용하였다. 이삼장군 영정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백제군사박물관.

    이삼장군고택 ktk84378837.tistory.com/8984 명재(윤증)고택 https://ktk84378837.tistory.com/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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